아르보 패르트
인류학자나 음악학자 일부는 옛날부터 큰 동물 발자국처럼 쿵쿵 울리는 소리는 ‘낮은’ 땅바닥에서 왔고, 날카로운 새나 날벌레의 소리는 ‘높은’ 하늘에서 왔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쓰이게 됐다고 말합니다.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높은’ 음부터 서서히 내려오는 멜로디는 분명 뭔가 서서히 떨어지는 느낌을 줍니다. 러시아의 대가 차이콥스키가 ‘떨어지는’ 멜로디를 즐겨 썼죠. ‘비창’ 교향곡 4악장 첫 주제가 대표적입니다. 무엇이 떨어질까요? 마치 사람의 고개가 떨어지면서 한숨을 쉬는 것 같습니다. 차이콥스키의 ‘떨어지는’ 선율은 대개 비탄과 절망을 암시합니다.
왜 이런 곡을 썼을까요? 이 곡은 작곡가 패르트 자신이 존경한 영국의 선배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1913∼1976)이 별세하자 그를 기리는 뜻에서 작곡한 작품입니다. 차이콥스키에게 그랬던 것처럼, 현대의 작곡가에게도 하행(下行) 선율은 비탄과 애도의 이미지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이 곡에서 ‘눈발’을 떠올린 사람이 저뿐만은 아닌 모양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랑받은 레오 카락스 감독의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에서도 두 남녀가 재회하는 밤 장면에 이 음악이 흐르면서 눈발이 날립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