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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업체들 트럼프에 백기 들자… 선제투자로 충돌 피한 현대차

입력 | 2017-01-18 03:00:00

[현대차 “美에 31억달러 투자”]현대차 “트럼프 엄포와는 무관”
“자율주행-친환경차 R&D 확대와 기존 생산시설 개선 차원” 선그어
美압박에 부담 느껴 미리 움직인듯

“美에 제3공장 신설 검토 가능성”
“향후 수요 면밀 검토후 결정” 신중… 신설땐 국내생산량 줄여야 해
공장설비 감축-협력사 타격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전 세계 자동차 업체들에 미국 투자를 요구하는 가운데, 현대자동차그룹은 17일 미국 시장에 대한 31억 달러(5년간) 규모의 투자계획 및 신공장 건설 검토 가능성을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미국 앨라배마에 현대차 공장, 조지아에 기아차 공장을 가동하고 있고, 지난해 건설한 멕시코 기아차 공장(사진)에서도 북미 수출용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동아일보DB

 현대자동차그룹이 17일 미국 투자 계획을 전격 밝힌 데 대해 재계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기대에 ‘미리’ 부응하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포드는 16억 달러 규모의 멕시코 공장 설립 계획을 접었고 도요타도 5년간 미국에 1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며 트럼프를 달랬다. 제너럴모터스(GM)도 투자 계획을 밝힐 예정이다.

 한국 기업 중에서는 최근 삼성전자가 미국 내 가전공장 후보지를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LG전자 조성진 부회장은 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국제가전전시회(CES)에서 “북미 세탁기 생산기지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자동차 산업에 특히 관심이 많은 트럼프의 성향을 고려할 때 자동차업계에서는 “머지않아 현대·기아차에도 압박이 들어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현대차그룹이 트럼프를 의식해 먼저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 트럼프 말 나오기 전 움직인 현대차

 이날 정진행 현대차 사장의 발언은 사전 예고 없이 갑자기 나온 것이어서 파장이 컸다. 5년간 31억 달러(약 3조7000억 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외신기자 4명이 모인 간담회 자리에서 ‘깜짝 발표’한 것도 파격적이었다. 한 국산차 업체 관계자는 “한국과 미국이 모두 주목할 만한 사안을 대규모 공식 행사가 아니라 작은 규모의 간담회에서 예고 없이 밝힌 것은 현대차그룹이 국내에 미칠 파장을 의식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공식적으로는 미국 투자 계획과 최근 트럼프의 발언 사이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정 사장은 이날 “투자는 정상적인 경영 활동의 일환으로 검토된 것이며 트럼프 당선인의 발언과는 무관하다”며 선을 그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또 “현대차그룹이 매년 한국 공장과 연구시설에 12조5000억 원씩 투자해온 것과 비교하면 이번 미국 투자액은 큰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대차의 발표를 최근 트럼프의 발언과 따로 떼어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재계의 분위기다. 트럼프는 15일 “BMW가 멕시코에 공장을 지으면 국경세를 물리겠다”고 말했다. 5일에는 트위터에 “도요타는 멕시코에 코롤라 공장을 건설하면 안 된다. 미국에 지어라. 그렇지 않으면 막대한 국경세를 물어야 할 것”이라고 올렸다. 각국 자동차 업체들을 각개격파하듯 압박한 것이다. 현대차가 부담을 느낄 만한 배경이다.

 자동차업계의 이목이 쏠리는 부분은 미국 공장 신설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선 투자 계획과 달리 다소 모호한 입장을 내놨다. 현대차는 공식 입장에서 “향후 미국 산업수요, 현지 시장, 대내외 환경 등 변수를 감안해 면밀히 검토한 뒤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3년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 건설에는 10억 달러, 2006년 기아차 조지아 공장 건설에는 12억 달러가 들었다. 공장 하나 짓는 데 최소 1조 원이 넘는 돈이 들어간다.

 현대차그룹은 현 시점에 미국 신공장을 지어야 할 절실한 이유가 없다. 현대·기아차에 따르면 앨라배마 공장과 조지아 공장은 인력이 충분해 정상적인 3교대 근무로 돌아가고 있다. 멕시코 기아차 공장까지 세 공장이 충분히 수요를 감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국산차 업체 관계자는 “지금 현대·기아차는 미국에서 수요가 급증했다거나 주문량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수요에 큰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로 공장을 짓고 생산을 늘렸다가 공급 과잉이 되면 그룹 전체가 휘청거릴 수도 있다.

○ 국내외 산업구조 흔들 트럼프 쇼크

 만약 현대차그룹의 미국 제3공장 건설이 실제로 이뤄진다면 국내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불가피하다. 미국에 공장을 지어 생산량을 늘리면 자연히 한국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물량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장기적으로는 아반떼, 쏘나타 등 주력 세단 차종의 미국 생산을 대폭 늘리고 한국 생산을 줄여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 한 완성차업체 관계자는 “자동차의 국내 생산이 줄면 한국 공장은 설비 감축까지 내몰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이 1조 원을 투입해 지난해 9월 가동한 기아차 멕시코 공장도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기아차는 멕시코의 저렴한 인건비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무관세 혜택을 이용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면서 북미 수출 확대를 꾀하고 있었다. 멕시코 공장 생산물량 중 약 10만 대를 매년 미국으로 수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오는 모든 수입품에 35% 관세를 붙이고 NAFTA도 손보겠다고 나섰다.

 기아차를 따라 멕시코 공장을 세운 협력업체들도 우려하고 있다.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는 현대위아는 멕시코 공장에 4000억 원을 투입했다. 에어백쿠션을 만드는 효성은 2021년에 멕시코 제2공장을 완공할 예정이다. 기업들은 대규모 시설투자를 해놓은 상황에서 ‘관세 폭탄’이 떨어질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가 국내 산업까지 뒤흔들 상황을 미리 분석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미국 의존도를 줄일 방법까지 찾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동복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국내 자동차 산업을 구조조정할 만큼 피해가 클지는 불확실하지만 일단은 아세안, 유럽지역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뉴욕=부형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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