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어떻게 할지 남에게 물을 게 아니라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최진석 교수는 “집단 중의 한 명이 되도록 내몰리는 상황에서 벗어나 자존감과 민감성을 회복한 뒤에야 비로소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또다시 무거운 자괴감이 온 국민의 마음을 짓누르는 시기에 최 교수를 만났다. 2015년 ‘인문과학예술 혁신학교’를 표방하고 노장사상, 라틴어, 예술과 건축 등을 가르치는 현대판 서원 건명원(建明苑)을 설립한 그는 최근 강연 내용을 묶은 책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냈다. “수입한 사상으로 엮은 종속적 사고를 자신의 사고로 착각해 온 시대를 타파하고 다른 차원의 시선으로 도약해야 한다”는 골자를 18개 키워드로 나눠 풀어냈다.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건명원 한옥 강의실에서 마주 앉은 그에게 우선 최근 비선실세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생각부터 물었다.
관련자 책임을 밝히고 처벌하는 외연적 처리만으로 지나간다면 앞으로 유사한 비극이 끊이지 않으리라는 경고였다. 그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그동안 눈앞에 벌어진 불합리, 부조리, 부도덕에 훌륭히 저항하고 극복해 왔다”며 “그럼에도 ‘극복 이후’에 거의 언제나 한층 더 악화된 상황을 맞아야 했다”고 지적했다.
까닭이 뭘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태, 충분히 예견된 사고를 피하기 위해 미리 움직이는 민감성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 곳곳에는 각양각색 ‘일상의 최순실’들이 오래전부터 무수히 뿌리박혀 있었다. 그런 현실을 자각하고 혁파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과연 가능할까. 옳은 말이라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의혹이 일었다. 반문하는 기자에게 최 교수가 꾸짖듯 답했다.
다시 한 소리 들을 걸 각오하며 그가 못마땅해 할 물음을 던졌다. 눈앞의 사익을 위해 타인의 손해와 위험을 외면하는 세태가 보편화된 사회에 그런 품격을 기대할 수 있을지. 어쩌면 우리 사회는 ‘양보하면 밀려난다’는 조바심에 이미 뼛속 깊이 길들여진 게 아닐지.
“동의한다. 나 역시 우리 공동체의 가치관이 회복 불가능한 지경으로 망가졌다고 본다. 그러나 다른 선택이 없다. 지금 변화하지 못하면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치욕을 당할 위험이 크다. 천천히 덥혀지는 물 속에 앉은 개구리의 무심함을 경계해야 한다.”
책에서 최 교수는 민감한 지성을 가진 리더의 역할에 대해 강조했다. 한국 사회는 이런 지성의 경고를 입에 쓴 약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 리더의 출현을 바랄 수 있는 걸까.
“역사를 움직이고 사회를 도약시키는 건 합리적 과학적 분석 너머의 에너지다. 창의성을 말살하는 교육 시스템부터 바뀌어야 한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자신의 고유한 가치와 재능을 사랑하는 능력이 퇴화된 사람들의 사회다. 내가 나로서 살고 있는가, 타인의 꿈이 아닌 ‘내 꿈’을 꾸고 있는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내 생각으로 착각하고 있지 않은가. 그 답을 스스로 찾는 데서 모든 희망이 출발할 거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