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형 국제부 기자
하지만 교육계와 대학가에서는 글로벌화와 관련된 중요한 ‘씨앗’이 뿌려진 시기로 1997년이 기억된다. 한국 대학에 처음으로 국제 전문인력 양성을 목표로 한 특성화 대학원이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바로 국제대학원이다.
당시 ‘세계화’를 주요 국정 어젠다로 내세웠던 김영삼 정부는 국제지역학, 국제관계, 통상, 국제경제 관련 전문 인력을 길러낸다는 취지 아래 9개 대학(경희대 고려대 서강대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국외국어대 한양대)에 국제대학원을 설치했다. 또 2000년까지 약 760억 원 규모의 파격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유엔과 세계은행 같은 주요 국제기구와 유수 글로벌 기업의 본사에 한국의 젊은 인력을 진출시킨다는 설립 당시 목표는 욕심만큼 달성되지 않았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이런 분야에 진출한 졸업생 비율이 설립 초기나 지금이나 매우 미미하다는 건 모든 국제대학원의 공통점이다.
미국 중국 일본 등 한반도 주변국 관련 연구에만 집중해 글로벌화의 저변을 넓히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아프리카 중남미 인도 등 ‘이머징 마켓’에 대한 교육·연구 기능이 극도로 부족했다는 것에 대해선 국제대학원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한 것이라는 비난도 나온다.
세계적 명문인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의 발리 나르스 원장은 국제대학원의 핵심 기능으로 다양한 지역연구를 꼽았다. 그는 “한국 국제대학원들이 후발주자지만 이제 중동, 인도,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회원국 등 ‘아시아 이머징 국가’에 대한 교육과 연구는 활발하게 진행해야 하는 수준이 됐다”며 “이런 시도는 대학을 넘어 사회 전체의 글로벌화 수준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최근 국제대학원들 사이에 성년을 맞이한 것을 계기로 공동으로 향후 발전 방향을 논의하고, 체질 개선 작업을 진행하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한국 국제대학원들이 명칭에 걸맞은 모습으로 ‘변신’을 추진한다면 꼭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