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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용의 다른 경제]반기문 동생은 형을 좋아하지 않았다

입력 | 2017-01-18 03:00:00



홍수용 논설위원

 2006년 8월 전북 전주에서 당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둘째 동생 기호 씨를 만났다. 그 무렵 반 장관은 유력한 차기 유엔 사무총장 후보였다. 손해보험협회 호남지부장이던 반 씨는 “형이 잘나가는데도 동생을 별로 도와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자뿐 아니라 보험업계에 있는 다른 사람도 반 씨에게서 같은 말을 들었다. 형제간 감정의 골은 이미 깊게 파여 있었다.

유엔총장에 기댄 ‘연줄경제’

 경찰 출신인 반 씨는 손보협회 근무 초기에는 비교적 쉬운 해상보험 일을 했고 이후 보험사기 분야를 맡았다. 그의 전성시대는 2009년 정년퇴임을 하면서부터다. 상장기업 임원직부터 한식을 해외에 홍보하는 업무까지 고임금을 보장하는 자리 제안이 쏟아졌다.

 반 씨를 영입한 기업들은 그가 사업에 참여 중이라는 얘기만 흘려도 일이 잘 풀리는 업계의 생리를 잘 알았다. 사업 파트너들은 유엔 사무총장 동생이 임원으로 있는 회사를 달리 봤다. 반 씨가 미얀마 유엔대표단 직함으로 미얀마에서 사업을 했다는 주장도 있다. 반 전 총장도 모르는 사이에 ‘반기문 동생’의 영향력은 경제계의 연줄을 따라 퍼져 나갔다.

 10년 전 반 씨는 잘나가는 형이 자신을 더 많은 보상이 따르는 자리로 밀어주길 기대했을 수 있다. 광장의 촛불이 커진 지금 기준으로는 말이 안 되지만 반 씨는 실제 형의 후광 덕분에 그런 자리에 올랐다. 이제 반 씨는 형을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그 대가로 ‘반 전 총장 측근 스캔들’이라는 폭탄의 뇌관은 친인척 연줄 아래 길게 매달려 있다. 반 전 총장 귀국 직전 첫째 동생인 반기상 씨와 조카 주현 씨가 뇌물죄로 기소된 것은 뇌관의 일부가 드러난 것뿐이다.

 반 전 총장은 ‘사진 한번 찍자’는 요청에 관대하다. 사진을 찍은 사람들은 그와 친구니, 지인이니 하는 말로 포장한다. 이게 리스크로 돌아올 수도 있음을 반 전 총장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모르는 척하는 것일 수도 있다.

 2011년 8월, 외국계 금융회사 회장의 집무실에는 K 회장 부부와 반 총장 부부가 함께 찍은 사진이 잘 보이는 자리에 놓여 있었다. 부부가 같이 사진을 찍는 것은 매우 친한 사이라는 증거라고 했던 K 회장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당국은 그 회사에 대해 법 위반 혐의를 두고 조사 중이었다. 실제 두 사람이 막역한 사이일 수도 있지만 스캔들은 우정의 진정성 여부를 가리며 터지진 않는다.

 반 전 총장의 친인척과 지인이 경제계의 각종 이권에 연루돼 있다는 의혹이 계속 커진다면 그는 보통의 정치인과는 다른 잣대로 비판받게 될 것이다. 정권 교체가 아닌 ‘정치 교체’를 공언했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의 문제는 권력구조의 꼭대기에서 비선 조직이 사적 통치를 하고 경제 권력이 편승하면서 연줄에 얽힌 정실자본주의가 공고해졌다는 점이다. 반 전 총장 측근 비리는 이런 고질병의 전염 과정을 그대로 따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공짜점심’ 토해내게 하라

 10년 전 반기호 씨는 정경유착과 지대(특혜) 추구 행위 같은 큰 이슈부터 잘난 형에 대한 소회까지 할 말이 많았다. 반 전 총장은 ‘못난 짓하지 말라’고 다그치기 전에 동생이 지난 10년 동안 겪은 경제의 민낯을 들어보기 바란다. 첫째 동생의 비리 의혹에 대해선 ‘모르는 일’이라는 식의 대응으로는 부족하다. 측근 누군가가 공짜점심을 먹었다면 토해내게 하고, 쇠락하는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산소에서 퇴주잔을 받아 마시든 뿌리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