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금지법 시행후 첫 명절… 특수 실종에 상인들 울상
한산한 전통시장 설 연휴를 열흘 앞둔 17일 한산한 서울 금천구 독산동 우시장. 상인들은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5만 원 한도에서 한우 선물세트를 만들 수 없어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고 하소연했다. 정동연 기자 call@donga.com
○ “이제 명절 대목은 없다”
같은 날 오전 11시경 서울 금천구 독산동 우시장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았다. 1년 전만 해도 선물세트를 맞추러 온 손님들로 시장 전체가 북적일 시간이지만 이날은 달랐다. 두 시간 동안 시장을 오간 손님은 10명 남짓에 불과했다. 그나마 집에서 먹을 고기 구입이 목적이었고 선물세트를 보는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과거 진열대를 가득 채웠던 다양한 한우 선물세트는 자취를 감췄다. 노경열 독산동우시장상인연합회 회장(50)은 “사골이든 갈비든 조금만 구색을 맞추면 한우 선물세트는 20만 원이 훌쩍 넘어간다”면서 “한우는 단가 때문에 5만 원에 맞출 수가 없다”고 말했다.
선물세트를 꼭 구입해야 하는 손님들 역시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설에 한우 세트를 구입한 서영희 씨(44·여)는 올해 호주산 쇠고기로 구성된 선물세트를 구입했다. 서 씨는 “5만 원 이하의 한우 선물세트는 양이 적거나 질이 떨어져 도저히 드리기가 어렵다”며 “그나마 선물 모양새를 갖추려면 수입 쇠고기를 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백화점에서 선물세트를 샀던 직장인 유지원 씨(34·여)는 영등포 청과물시장을 찾았다. 사과와 배 혼합 세트를 주로 구입했다는 유 씨는 “여러 군데 선물을 보내야 하는데 5만 원씩 계산해 보니 필요한 만큼 살 수가 없었다”고 했다. 유 씨는 전통시장에서 구입한 과일로 선물세트를 만들어 보낼 예정이다.
○ “선물도 상한선 높여야” 커지는 목소리
영등포 청과물시장 상인 도모 씨(50)는 “원래 4만, 5만 원 정도의 선물을 구입하던 사람들에게 3만 원 이하의 선물이 눈에 들어오겠느냐”며 “가격을 낮춰 싼 선물을 사느니 아예 선물을 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선물을 받는 사람도 가격이 신경 쓰이는 건 마찬가지다. 송파구 소재 중학교 교사 권모 씨(42·여)는 “청탁금지법 한도 내에서는 선물을 받아도 된다는 분위기지만 그마저도 주변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며 “선물을 받고 난 뒤에도 가격을 정확히 알 수 없다 보니 돌려주는 경우도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설을 앞두고 명절 특수가 사라지면서 청탁금지법 상한 금액을 올려 달라는 요구도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부 안팎에서 식사비 한도 상향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축산·화훼업계 등의 선물 한도 상향 요구도 커지고 있어 당분간 가격 상한을 둘러싼 진통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