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요한 기사단으로도 불리는 몰타 기사단은 11세기 예루살렘에서 순례자 구호 등 의료 목적으로 생겨났다. 한때 지중해 로도스 섬을 정복해 독립국가로 존재했지만 오스만제국에 의해 쫓겨나 몰타로 옮겨갔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성요한 대성당은 기사단이 부와 권력을 누리던 시절의 자취다. 나폴레옹의 몰타 정복으로 다시 떠돌던 기사단은 1834년 로마에 정착해 지금도 전 세계에서 의료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 기사단은 붉은 바탕에 흰 십자가가 그려진 국기와 자체 여권을 갖고 106개 나라와 외교관계를 맺는 등 ‘영토 없는 국가’로 알려져 있다.
▷요즘 몰타 기사단이 ‘콘돔 스캔들’을 둘러싸고 교황청과 대립 중이다. 국제구호활동으로 미얀마에서 콘돔을 배포한 것이 발단이었다. 성노예로 끌려온 매춘 여성들에게 에이즈 예방을 위해 콘돔을 나눠준 일을 문제 삼아 작년 말 기사단 수장인 레이먼드 버크 추기경이 “인공 피임을 금지한 교리에 어긋난다”며 관련자를 해임했다. ‘교황청의 뜻’이라며 강행했지만 거짓으로 드러난 거다. 바티칸 교황청은 조사단을 파견하기로 했다. 그러자 기사단이 ‘주권 침해’라며 조사를 거부하는 사상 초유의 항명파동을 일으켰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