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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동빈 기자의 세상만車]튜닝산업의 마지막 기회

입력 | 2017-01-19 03:00:00


13∼15일 일본 지바 현 마쿠하리 메세에서 열린 ‘2017 도쿄오토살롱’. 417개 자동차 튜닝 관련 업체가 참가했으며 32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해 성황을 이뤘다. 도쿄오토살롱 제공

석동빈 기자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스마트폰 액세서리 시장 규모는 2조 원에 이릅니다. 스마트폰도 아니고 겨우 액세서리인데 규모가 커서 놀라는 분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계산을 해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국내에 개통된 스마트폰이 인구 5200만 명보다 많은 6000만 대. 케이스, 액정보호 필름, 보조배터리, 자동차용 충전기, 이어폰 등 액세서리에 대한 지출을 1대 평균 3만5000원씩 잡으면 간단히 2조1000억 원이 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에 최근 들어간 돈만 해도 케이스와 자동차용 거치대, 보조배터리, 블루투스 이어폰, 추가 충전기 등을 합치면 20만 원을 넘습니다.

 그렇다면 국내 등록 대수가 2200만 대인 자동차의 튜닝(개조) 시장 규모는 얼마나 될까요. 대당 평균 가격이 스마트폰의 20배 이상인 자동차이니 수조 원은 쉽게 넘길 것으로 보이지만 스마트폰 액세서리의 4분의 1인 5000억 원에 불과합니다. 자동차 튜닝은 성능이나 디자인 개선을 위해 자동차 출고 이후에 추가하는 엔진 부품, 휠, 서스펜션, 브레이크, 공기역학 제품과 서비스를 뜻합니다. 고부가가치 산업이지만 한국은 각종 규제와 시장 미성숙, 기술과 자본력 부족 등으로 활성화하지 못했죠.

 그래서 정부는 2013년 8월 1일 신성장 동력 중 하나로 자동차 튜닝산업을 지목하고 2020년까지 4조 원 규모로 성장시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웃 일본만 해도 14조 원, 세계적으로 100조 원에 이르는 튜닝 시장을 따라잡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3년 5개월이 지난 지금은 규제를 완화하고 지원책을 펼쳐 튜닝 시장이 연간 2조 원 정도로 성장해 있어야 정상일 텐데요. 어찌된 일인지 추정 시장 규모는 몇 년째 5000억 원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승현창 자동차튜닝협회 회장(핸즈코퍼레이션 대표)은 “규제가 줄고 지원하려는 움직임이 없지는 않지만 실질적인 온기를 느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했습니다. 튜닝협회의 한 임원도 “정부가 조금씩 풀어주고는 있지만 너무 늦은 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부의 튜닝산업 육성 계획 발표에 희망을 품은 중소업체들은 그동안 100차례 이상 회의와 포럼을 열고 활성화 방안을 제안하며 학수고대했지만 좀처럼 규제의 빗장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탓에 그동안 경기 고양 수원 용인시, 전남 영암군, 경남 밀양시, 경북 김천시 등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자동차산업 클러스터나 자동차 유통복합단지에 튜닝 관련 시설을 넣겠다고 발표를 했지만 실현된 내용이 거의 없습니다.

 지난해 12월 30일에야 규제가 풀렸기 때문입니다. 국토교통부는 ‘자동차 튜닝에 관한 규정’을 새롭게 고시해 인증된 부품과 경미한 장치는 교통안전공단의 구조변경 허가를 받을 필요 없이 간단한 신고만으로 차에 부착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이처럼 규제 완화가 늦었던 것은 안전과 관련된 부분이어서 까다롭게 들여다본 이유도 있겠지만 교통안전공단이 구조변경 인증 수수료가 줄어들까 봐 알게 모르게 몽니를 부린 것도 크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읍니다.

 자동차 튜닝산업 활성화의 선결 조건이었던 규제 완화가 늦어진 지난 3년간 시장에는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중국 파워가 엄청나게 커진 것이죠. 중국 광저우 융푸루(永福路) 지역 자동차용품 단지를 다녀온 국내 자동차 업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엄청난 규모에 혀를 내두릅니다. 국내 상당수 자동차 소비자들은 중국의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를 통해 중국에서 생산된 튜닝용품이나 액세서리를 싼값에 수입해 쓰고 있습니다.

 수입차를 위한 고가의 튜닝 제품은 유럽과 미국 일본 제품이 차지했고, 중저가 시장은 중국 제품이 휩쓸기 시작한 것이죠. 국내 튜닝용품 제조업체들은 뒤늦게 투자를 했다가 실패할까 봐 주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좌절하기는 이릅니다. 중국산은 아직 낮은 품질과 불법 카피 제품이 많아 한국 튜닝 업체들이 고품질과 합리적인 가격, 세련된 디자인의 제품을 개발한다면 가능성이 있습니다. 게다가 앞으로 늘어날 전기차에 대한 튜닝도 새로운 기회입니다.

 13∼15일 일본에서 열린 튜닝 자동차 전시회인 도쿄오토살롱을 다녀온 황욱익 자동차 칼럼니스트는 “일본은 젊은층의 자동차 구입이 줄었지만 업계와 정부의 노력으로 튜닝산업의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며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운전 재미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스포츠 모델을 지속적으로 내놓는 것도 튜닝산업 활성화에 큰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인의 도전정신과 기술력에다 일본처럼 국내 완성차 업체가 튜닝 수요가 많은 차종을 내놔준다면 새로운 성장 잠재력 확보와 함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도 이뤄질 수 있지 않을까요.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