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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짚어보기]‘블랙리스트’ 수사 정점으로…특검 칼날, 결국 朴대통령에게?

입력 | 2017-01-19 17:40:00


특검이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수사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특검의 칼날이 조윤선 문체부 장관과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넘어 박근혜 대통령까지 겨눠질까. 채널A '외부자들'과 동아일보 기사로 정리한다.

# 특검과 블랙리스트





진중권 :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 철학, 이념, 방식이다. 유신시대 경험을 당연하고 정상이라 생각한다. 이걸 맡아서 실행한 분이 김기춘이다. 그 밑에 정무수석실에서 작성하고 교육문화수석실에 전달하고 문체부에서 실행한 것이다. 정관주 신동철 김종덕 김상률이 구속영장 발부됐다 그 위에 조윤선, 그 위에 김기춘이 있고 가장 위에 대통령이 있는 것이다. 과연 김기춘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특검에서는 확신하는 것 같고 대통령까지도 법적 책임이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동아일보 2017.1.19 6면



정봉주 : 특검이 국민과 함께 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최순실 게이트에서 보면 가장 국민 혐오가 우병우였다. 그 자리를 제치고 김기춘이 올라왔다. 김기춘이 '법꾸라지'라고 할 정도로 다 피해갔는데 블랙리스트가 나온거다. ‘드러난 악’이 박근혜라면 그림자처럼 '숨어있는 악'이 김기춘이다. 특검에서 수사 하는 것 중 가장 신빙성 높은 제보가 블랙리스트다. 특검 입장에서는 성과도 나오고 국민에게 가장 박수 받을 수 있는 김기춘에게 수사가 가고 있다. 결과가 김기춘 구속까지 가는 순간 특검은 최순실 수사에도 큰 도움을 받을 것이다.

진중권: 특검에서 '헌법적 가치에 관한 문제다'라고 말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이념을 배신하는 것이다.

▷관련기사: 특검 “블랙리스트, 헌법 위배”… 김기춘-조윤선 고리로 朴대통령 조준 (동아일보, 2017.1.18)

전여옥: 최순실은 박근혜 대통령의 마음을 읽는 사람이다. 대통령은 문화예술계 사람들에게 상처, 트라우마가 있다. 유신정권 때 가장 강력히 저항한 사람들이 김지하, 김민기 등 문화 예술인이다. 조선시대에도 광대는 왕을 조롱했다. 그것을 박근혜 대통령은 두려워했던 거다. 

정봉주: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데자뷰다. '미인', '왜불러'가 70년대 금지곡이다. 당시 영화 주제를 검열하고 언론을 장악했다. 조금만 정권에 비판적이면 금지곡이 됐다. 그걸 전문적으로 했던 사람이 75~79년까지 대공국장으로 있던 김기춘이다. 아버지가 하던걸 김기춘이 실행했다. 이제 그 딸이 대통령이 됐다. 정부가 잡으려고 한 것은 교육 언론 문화였다. 언론을 잡으려고 방송사 낙하산인사를 했고, 교육을 잡으려고 국정교과서를 집필했다. 마지막으로 문화는 사회를 장악하는 도구이다. 블랙리스트가 나온 것이다. 







# 김기춘 전 비서실장 

전여옥: 김기춘은 자기가 법을 초월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라와 통치를 위해 블랙리스트를 만든다는 것은 매우 적절한 업무라 생각하고 스스로 논리를 만들고 자기의 체계를 만들었을 것이다.

정봉주: 김기춘이 정말 무섭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공수사국장으로 있으면서 조작된 간첩 사건에서 무죄 나온게 23건이다. 모두 김기춘의 지휘 하에 움직였다. 재심에서 무죄된 다음에 취재했던 기사가 사인을 들이 밀었는데도 '그런 사인 처음 봅니다'라고 했다. 내가 볼 때 사람들이 수십명이 죽어 나갔는데도 모른다고 하는걸 보니 이번에도 끝까지 부인 할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못 빠져 나갈 것이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왕실장’ ‘기춘대원군’ 등으로 불리며 국정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최고 실세’로 통했다.

경남 거제 출신인 김 전 실장은 서울대 법학과에 재학 중이던 1960년 제12회 고등고시에 합격했다. 대학원 재학 당시엔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5·16장학회로부터 장학금을 받기도 했으며 유신헌법 제정실무팀에서 핵심 역할을 맡는 등 요직을 거쳤다. 김 전 실장은 1974년 육영수 여사 살해범인 문세광의 자백을 받아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큰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실장은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으로 발탁됐고, 이후 대통령법률비서관을 지내는 등 박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직접적 인연도 이때쯤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김재규 중정 부장은 최순실 씨의 부친 최태민 씨의 각종 비위 사실을 담은 ‘최태민 보고서’를 1979년 작성해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바 있다. 이 기간 중정과 청와대에서 근무한 김 전 실장이 당시 보고 내용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때부터 최태민-최순실 가문과 박 대통령의 관계를 파악하고 있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지낸 김 전 실장은 1996년 신한국당의 공천을 받아 15, 16, 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 전 실장은 박 대통령 당선 이후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40년 가까이 박 대통령과 끈끈한 인연을 맺어온 것이다.

(김기춘, ‘최태민 보고서’ 작성때 中情-청와대 근무, 동아일보 2016.11.19 )



안형환: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노련한 사람같다. 검사 임관이 64년이다. 이미 50년 전에 권력의 정점을 누렸던 사람이다. 72년 유신헌법 제정에 참여했다. 이미 대한민국 만드는 데 참여했다. 74년 故 육영수 여사 암살자 문세관 취조하며 자백을 받아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 92년도 초원복집사건도 있었죠.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3선 의원을 거쳐 2004년에는 故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위원장을 맡았었다. 2013년부터 2015년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복귀해 권력을 유지해왔다. 

진중권: 김기춘을 이야기 할 때 대명사로 따라붙는게 공작정치다. 없는 사실을 만들어서라도 사람들이 믿게 만드는데 능한 사람이다

안형환: 박근혜 대통령이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충성심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부렸던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서 데려다 썼다. 박근혜 대통령이 선거 때 썼던 7인의 원로가 있다. 다들 대통령 얼굴을 보기 힘들어서 관계가 소원해졌다. 유일하게 대통령을 모신 사람이 김기춘이다. 왕 모시듯이 군신관계가 철저했다고 들었다. 

▷관련기사: [토요뒷담]朴대통령은 왜 74세 비서실장을 택했나 (동아일보, 2013.8.10)

전여옥:
박근혜 대통령은 멘토라고 생각했고 김기춘 실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후견인이라 생각했다. 김기춘 실장이 노령에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들어가는 걸 보면서 박 대통령이 임무수행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거라는 감이 있어 후견인으로 들어간거다. 그분은 사람을 다루는 훌륭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친박 의원들은 박 대통령에게 낯뜨거운 아부를 했다. 그런데 김기춘 실장은 아부가 아니라 신탁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아무나 못한다

구성=김아연 기자 ay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