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삼성그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어제 기각했다. 조의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기각 사유로 ‘부정한 청탁에 따른 대가라는 데 대한 소명(疎明)의 정도’와 ‘지원 경위에 대한 구체적 사실관계와 그 법률적 평가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를 들었다. 한마디로 뇌물이라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얘기다. 통상 기업인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에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없다고 기각하는 때와 사뭇 다르다.
검찰 수사를 이어받은 특검이 한발이라도 더 나갔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 가장 집중한 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 혐의 수사다. 그러나 특검은 검찰이 권력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삼성이 냈다고 본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까지 뇌물로 봤다. 지나친 뇌물죄 확대 적용으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특검 수사는 난관에 봉착했다.
그럼에도 특검은 SK, 롯데, CJ 등 다른 대기업으로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의 강요에 의해 774억 원을 출연한 기업들에 뇌물죄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애초부터 법조계에서 제기됐다. 무엇보다 목적이 정해진 한시적인 특검 수사가 최순실의 국정 농단을 파헤치는 데서 벗어나 광범위한 부패 혐의 수사로 확대될 우려가 있다.
김상률 전 대통령교육문화수석비서관은 어제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나와 “박 대통령이 최순실 씨 회사인 더블루케이 대표를 만나 보라며 이름과 연락처를 줬다”며 ‘1년 4개월 수석 재임 동안 대통령이 특정 업체를 언급한 특이 사례’로 들었다. 특검도 2014년 5월 박 대통령이 “좌파 문화예술계 인사들에게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이 지원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며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했다는 정황을 확보했다고 동아일보가 보도했다. 박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의 국정 농단 증거와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특검이 수사 기한인 다음 달 말까지 수사를 마무리하려면 국정 농단이라는 본류에 집중하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