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세계 질서 변화 예고 중국 굴기 대처 위해 러와 파격적 연대 시도 시험대에 오른 한미동맹… 양자 이익 위해 유지 발전돼야
토머스 허버드 전 주한 미국대사
‘하나의 중국’ 원칙을 뒤흔들어 버린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는 미국을 위한 협상가를 자처했다. 끊임없이 동맹의 가치에 의문을 표시하고, 자유무역이 주는 혜택을 폄훼했다. 중국의 굴기(굴起)에 대처하기 위해 러시아와 파격적인 연대를 하겠다는 것은 이제 뉴스도 아니다. 이렇게 우리는 트럼프 시대를 맞이하며 ‘머릿속의 안전벨트’를 단단히 조여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그런데 지난주 트럼프가 꼽은 외교안보라인 투톱을 보고서는 안도의 한숨을 잠시 내쉴 수 있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후보자의 청문 과정을 보며 ‘잘하면 트럼프가 내각의 판단에 귀를 기울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두 후보자는 몇몇 핵심 외교 이슈를 놓고 트럼프와 다른 견해를 보였다. 본질적으로는 현실주의정치(realpolitik)에 기반을 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명제에서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러시아와의 관계 회복 등 미묘한 이슈에서는 (트럼프의 생각과) 온도차가 있었다. 유럽과 아시아 지역 동맹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 않았던 트럼프와는 달리 두 후보자가 이들 지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점 역시 눈에 띄는 대목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북핵 문제에 대해 트럼프나 기성 워싱턴 정치세력이 방법론의 차이가 있을 뿐 큰 이견이 없다는 점이다. 트럼프가 취임을 앞두고 북핵 억제라는 시그널을 준 것은 장기간 국정 공백 사태를 겪고 있는 한국으로서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북한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준비사업이 마감 단계에 있다고 밝히자 트럼프는 올해 초 트위터를 통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트럼프가 취임을 앞두고 이런 확고한 북핵 메시지를 발신한 것은 고무적이다.
트럼프가 “중국이 대북제재에 나서지 않았다”며 중국 역할론을 부각시킨 것은 북핵 해법의 본질을 건드리면서도 동시에 한국에 숙제를 안겨준 측면도 있다. 중국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를 놓고 보복 조치를 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사드 배치와 중국의 대북제재 참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을지는 트럼프 취임 후 한미 간의 핵심 현안이 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에도 한미동맹이 비교적 탄탄한 모양새를 취할 수 있었던 것도 일단 다행스러운 일이다.
앞으로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다양한 한반도 정책 시그널을 접할 것이다. 트럼프는 한미동맹과 관련해 몇몇 어려운 질문을 던질 것이다. 현실로 다가온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가 대표적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운명도 현재로선 알기 어렵다. 하지만 북핵이라는 상수가 있는 한 새 행정부에서도 한미동맹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 유지, 발전돼야 한다. 한미 모두 이에 대한 확신을 갖고 트럼프 행정부의 한미 관계도 이런 전제에서 조율해야 할 것이다.
토머스 허버드 전 주한 미국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