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논설위원
# 또 다른 대기업 B그룹 이야기다. 매일 아침 6시 반에 출근하는 회장을 사옥 현관에서 기다리다 문을 열어주던 실세 부사장이 있었다. 어느 날 회장이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옆에 서 있던 부회장에게 “저 사람, 아직도 회사에 다니나?” 했다. 그날로 부사장은 집에 갔다. 사흘 뒤 회장은 현관 앞에서 만난 부회장에게 “아침마다 문 열어주던 걔는 왜 안 보이나?” 물었다. 부사장은 그날로 다시 출근했다.
황제처럼 구는 재벌 오너들
한국의 정치는 민주공화제이지만 많은 대기업은 ‘절대 군주’가 지배한다. 기업인들의 제왕적 리더십을 보며 분노에 앞서 두려움이 느껴지는 것은 한국의 구시대적 기업문화로 과연 4차 산업혁명 파도에 올라탈 수 있겠는가 하는 걱정 때문이다.
올해 스위스 다보스포럼의 핵심 의제는 리더십이었다. 초(超)불확실성 시대의 해법은 결국 리더십이라는 문제의식 아래 ‘소통과 책임의 리더십(Responsive and Responsible Leadership)’이 핵심 키워드로 다뤄졌다. 변화를 세심하게 읽고 미래를 책임 있게 이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LG전자 프랑스법인을 10년간 이끈 에리크 쉬르데주는 2015년 ‘한국인은 미쳤다’란 책에서 “한국 기업문화는 효율성과 목적 달성을 위한 에너지가 대단하지만 너무 위계적이고 군사적”이라며 “이런 문화로는 글로벌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힘들다”고 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려면 기업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미래지향적인 리더십만이 인재들을 춤추게 할 수 있고, 명령 복종 획일성이 지배하는 기업문화를 창의 자율 다양성이 꽃피는 분위기로 바꿀 수 있다.
촛불·태극기 넘어 미래를
정경유착도 끊어내야 하지만 기업 리더십의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의 개념도 모르는 대기업 오너들이 허다하다. 구시대 오너들은 용퇴하고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전문경영인 제도도 전향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촛불, 태극기도 좋지만 미래 먹거리가 우선이다. 선장도 없고 엔진도 꺼져가는 대한민국호(號)를 생각하면 목이 탄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