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 대신 승자독식, 경제 불평등 확대 포용성 떨어지고 경제주체 활기 잃어 분배문제 해결 위해 조세정책 손보고 직업훈련 힘써야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저성장이 오래 지속되면 그것은 단순히 경기 변동의 문제라고 볼 수 없다. 무언가 더 근본적인 부분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대런 애스모글루 교수와 하버드대의 제임스 로빈슨 교수는 경제성장은 장기적으로 경제제도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경제제도가 착취적(extractive)이면 성장이 정체되고, 포용적(inclusive)이면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라는 책에서 착취적 경제제도의 사례로는 북한과 라틴아메리카를, 포용적 제도의 사례로는 한국과 미국을 꼽고 있다. 착취적 경제제도는 사실상 사회의 한 부분에서 소득과 부를 뽑아내 또 다른 부분에 이익을 주는 제도이며, 포용적 경제제도는 개개인이 재능과 기량을 최대한 발휘하고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대중의 경제활동 참여를 촉진하는 제도이다.
그러면 지금 한국의 10대 앞에 놓인 미래는 어떠한가. 노력해도 원하는 직업을 갖기 어렵고, 상당수는 취업을 해도 저임금에 빚 갚느라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 집을 사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사업에 실패하면 재기가 어렵다. 투자와 노력을 해도 그 과실을 누릴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재능과 기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사태가 이렇게 된 것은 경제제도의 포용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생태계는 상생보다는 약육강식의 정글이 되어버렸고, 승자 독식의 시장에서는 소득과 부가 최상위 계층으로 몰리고 있다. 다시 말해, 포용적 경제제도의 모범생이던 한국이 언젠가부터 착취적 제도에서나 있을 법한 모습들을 하나둘씩 보여주기 시작했고, 그것이 대다수 경제주체의 활력을 떨어뜨리면서 저성장을 가져온 것이다.
경제의 포용성이 약해지는 현상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자본주의 경제 운용의 역사가 일천한 우리나라에서는 그 심각성이 더욱 크다. 특히 경제적 불평등과 격차 확대는 더 이상 내버려둘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경제사학자 배리 아이컨그린은 현재의 격차 확대는 새로운 것이 아니며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산업혁명 초기 불평등이 확대될 때 대체로 다음의 두 가지 견해가 있었다. 첫째는 경제발전 과정에서 일부 노동자가 고성장 부문으로 일자리를 옮기면서 노동자 간 격차가 확대되지만 결국 조정이 이루어져 전반적 소득수준이 올라가게 된다는 낙관론이다. 둘째는 자본의 수익률을 보장해주기 위해 취약 부문에 대한 착취가 이루어져 불평등이 확대되고 대중의 생활수준이 저하된다는 비관론이다. 아이컨그린은 당시의 통계를 볼 때 비관론이 현실에 가까웠다고 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