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24와 함께하는 독자서평] ◇홀/편혜영 지음/210쪽·1만3000원/문학과지성사
※지난 한 주 동안 독자 서평 177건을 받았습니다. 이 중 한 편을 선정해 싣습니다.
겨우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 왼손으로 등 긁개를 잡는 일만 가능한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몰입은 기억의 반추다. 그는 자리에 누워서 기억을 꿰맞춰 나간다.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한 것이 생각의 시작이었다. 그러다 아내를 생각한다. 기자의 사명감과 거리가 먼, 그저 샤넬 슈트를 입은 멋쟁이 오리아나 팔라치를 꿈꾸던, 조금은 허영 있던 여자. 하고 싶은 일은 너무 많았고 대부분 이뤄내지 못했지만 사랑스러웠던 여자. 그리고 마침내 ‘동경’과 ‘욕망’을 구별하게 된 여자. 여기까지가 그가 알던 그녀였다. 거기에는 어떤 오차도 없이 정확한 형태의 아내가 완성돼 있었다.
장모에게 오기는 추잡하게 살아남으려는 존재다. 모든 것을 가지고 있을 때 한 번도 감사하지 않았으면서 다 잃고 나서 이해해 달라고 조르는 비열한 존재다. 딸이 큰 구멍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아무것도 못 봤으면서 자신이 빠진 시궁창에서 나갈 수 없느냐며 눈치 보는 쓰레기다. ‘강자’와 ‘약자’가 나뉘는 순간은 둘 중 하나다. 균형을 이루던 관계에서 한 명의 힘이 강해지거나 혹은 약해지거나. 영원한 강자도 약자도 없다. 이 소설의 주인공 오기가 그렇다.<끝>
김성준 인천 남동구 간석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