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영 경제부 차장
이곳은 1920∼1950년대 얼음 창고로 쓰였던 곳으로 건축가 이의중 씨(39)가 운영하는 ‘아카이브 빙고(氷庫)’라는 카페다. 일본에서 건축을 공부한 그는 귀국 후 고급주택을 수리하는 일을 했지만 마뜩하지 않았다. 그러다 국토연구원에서 오래된 건축물 관련 업무를 하며 이곳을 만들었다. 50m²도 안 되지만 스탠딩 클럽파티나 작은 음악회, 주민들의 소모임, 문화계 인사들의 회의가 열린다. 인천 청년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테이블엔 인천 주제의 책들을 쌓아뒀다.
요즘 버려진 건물에 시간의 흔적을 담아내 부활하는 건축물들이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그동안은 서울의 선유도공원처럼 낡은 정수장을 공원으로 만드는 등 공공부문이 주도해 이뤄졌던 일들이 최근에는 민간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버려진 시설물을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곳도 많다. 서울 청량리 청과물시장에 들어서면 시장 건물 2층에 뜬금없는 장소가 나온다. 수제맥주와 푸드코트, 루프트톱 캠핑장 등을 갖춘 ‘상생장’이다. 상인들이 20년간 창고로 쓰던 곳을 개조한 공간이다. 중장년층으로 붐볐던 시장에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늘었고, 영국 일렉트릭 듀오인 ‘혼네’나 외국인 교환학생 등이 방문하는 명소가 되고 있다.
인구 구조나 건축물 공급 등의 측면에서 볼 때 이런 움직임은 반갑다.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빈집 수만 해도 106만9000채(2015년 말 기준)에 이른다. 기존 건물의 노후화와 인구 고령화 등으로 이런 추세가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도 예외가 아니어서 구도심과 뉴타운 해제 지역 등을 중심으로 빈집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수익성이 좋은 극히 일부 지역에선 재건축·재개발이 가능하겠지만 전국 단위로 버려지는 건축물이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일본의 예를 봐도 그렇다.
낡은 것은 밀어버리고 새로 짓고 높이 올리는 개발 시대의 논리가 무조건 통하던 시대는 지났다. 오래된 것의 멋과 가치를 담은 공간에 대한 호응도 높다. 이런 건축물이 사람들에게는 뜻밖의 재미(serendipity)를 안겨 줄 수 있다. 백년 넘은 건축물이 건재를 과시하는 유럽이 꽤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국내에서도 버려진 건축물이 때에 따라서는 귀중한 자원이 될 수 있다. 현재 ‘빈집 및 소규모 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기왕이면 지역성과 역사성을 담아 새로운 가치를 담아내는 건축물이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김유영 경제부 차장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