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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부’로 돌아온 블랙리스트

입력 | 2017-01-23 03:00:00

[김기춘-조윤선 구속]김기춘-조윤선 동시 구속수감
조윤선, 현직장관 첫 구속 불명예 사퇴
대통령측, 리스트 작성지시 보도에 “특검 관계자 상대 법적대응”




구치소에서 특검 불려나온 김기춘-조윤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 수감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위쪽 사진)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아래쪽 사진)이 각각 2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로 소환되고 있다. 특검은 김 전 비서실장과 조 전 장관을 상대로 박근혜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했거나 관여했는지 집중 조사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과거 ‘미스터 법질서’로 불렸던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78·구속)은 양손에 수갑이 채워진 채 서울구치소 호송차에서 내렸다. 22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소환된 김 전 실장의 어깨는 처졌고, 얼굴은 흙빛이었다. 김 전 실장은 수의를 입지 않고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을 당시 입었던 양복과 코트를 입고 있었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시민단체 관계자는 “‘법꾸라지’ 자폭하라” “인간이 돼라”고 외쳤다.

 앞서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고 핏기 없는 얼굴로 초라하게 법원을 빠져나오던 모습에선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을 지내고 박근혜 정부의 ‘왕실장’으로 군림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22일 김 전 실장과 같은 호송차를 타고 특검 사무실에 도착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51·구속)은 김 전 실장에 앞서 호송차에서 내렸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굳은 표정으로 영장심사 때는 착용하지 않았던 안경을 쓰고 있었다. 수의를 입지 않고 영장심사 때 입었던 흰색 블라우스에 검은색 정장 차림이었지만 초췌했다. 앞서 21일에도 특검에 소환된 조 전 장관의 왼쪽 가슴에는 전날 달려 있던 문체부 배지 대신 수형자 번호가 붙어 있었다.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컬럼비아대 법학대학원 석사, 변호사 출신 등 화려한 이력과 주목받는 외모로 “‘꽃길’을 걸었다”는 평가를 받는 조 전 장관. ‘박근혜 정부의 신데렐라’라는 별명까지 붙었던 그가 수의를 입고 포토라인에 서는 일은 감당하기 어려워 보였다.

 조 전 장관은 21일 구속 직후 서울구치소에서 가족들과 면회하는 자리에서 장관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는 즉각 사표를 수리했다.

 특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수사로 구속된 공직자는 이 두 사람을 포함해 문체부 김종덕 전 장관(60)과 정관주 전 1차관(53), 신동철 전 대통령정무비서관(56)까지 5명이다. 특검이 지금까지 구속한 10명의 절반이다. 특검 안팎에선 “블랙리스트가 만든 사람들의 ‘살생부’가 됐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이 구속된 직후 블랙리스트 작성이 자신의 지시로 이뤄졌다는 보도가 나오자 “그런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며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박 대통령 측 황성욱 변호사는 21일 “허위 내용을 보도한 기자와 해당 기자에게 (김 전 실장 등의) 구속영장 범죄 사실을 넘겨준 익명의 특검 관계자를 명예훼손 및 피의사실 공표죄로 형사고소하고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도 낼 것”이라고 밝혔다.

 



 ▼ 불법 몰랐다는 ‘王실장 김기춘’ - 눈물 쏟은 ‘신데렐라 조윤선’ 결국 몰락 ▼
 

 “제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조심해 가며 반듯하게 살았는데….”

 20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51)은 눈물을 펑펑 흘렸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존재는 알았지만 작성이나 운용에 직접 개입한 적은 없다며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다. 변호인들이 옆에 있었지만 변호사 자격이 있는 조 전 장관은 스스로 변론을 했다. 

○ 울음 터뜨리며 스스로 변론했지만 구속

 조 전 장관은 ‘현직 장관 신분으로 첫 구속’이라는 불명예를 떠안는 게 큰 부담인 듯 “문체부 장관만큼은 꼭 해보고 싶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문화체육에 관심이 많아 정말 잘해 보려고 했다. 평창 올림픽도 성공적으로 개최해 나라 발전에 기여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문체부 장관이 된 뒤 본연의 업무에 너무 바빠서 블랙리스트에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는 게 변론의 요지였다.

 또 장관이 되기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을 할 때도 세월호 참사 수습 등 다른 일에 몰두하느라 블랙리스트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세월호 참사 직후 정무수석을 맡아 한 달 넘게 안산에 머무르며 피해자 유족을 위로했고, 그 이후로도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낙마와 연금개혁 등 현안이 많아 블랙리스트를 챙길 여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영장심사 내내 직접 타이핑해 온 메모지를 들춰가며 ‘셀프 변론’을 했지만 특검은 조 전 장관이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정황을 다수 제시했다. 자신의 해명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청와대와 문체부 관계자들의 증언 등 각종 기록 앞에서 조 전 장관은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영장심사를 한 성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45)는 조 전 장관의 주장을 배척하고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 “불법인 줄 몰랐다” 주장했지만 구속

 조 전 장관과 마찬가지로 성 부장판사에게서 영장심사를 받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78)은 블랙리스트 관련 지시를 하거나 보고를 받은 일은 인정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불법인 줄은 몰랐다”고 부인하는 전략을 폈다.

 김 전 실장은 영장심사에서 “좌파 예술인이나 단체에 대한 정부 지원을 줄이는 일은, 문체부 장관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향후 재판도 염두에 두고 ‘범죄인 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죄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펴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특검은 최순실 씨(61·구속 기소)가 블랙리스트 작성에 개입한 정황도 확인했다. 방귀희 한국장애인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상임대표가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과정에 최 씨가 개입했다는 문체부 관계자 등의 진술을 확보한 것. 방 대표는 지난해 10∼12월 새누리당 지명직 최고위원을 지냈으며 이명박 정부에서도 대통령문화특별보좌관을 지낸 보수 성향의 인물이다.

 최 씨가 방 대표를 블랙리스트에 포함시킨 구체적인 배경은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특검은 방 대표 같은 인물이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것은 리스트 작성의 기준이 단순히 이념 성향이 아니라 최 씨와 주변 인물들의 이권 개입에 방해가 되는지 여부인 것으로 보고 있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김준일·우경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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