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겨울올림픽 개폐막식 총연출 양정웅
18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민미술관 이마 카페에서 만난 양정웅 평창 겨울올림픽 총연출 감독은 “요즘 나라 안팎의 사정이 흉흉하고, 겨울올림픽 준비에 여러 가지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미래에 대한 도전과 희망으로 국민들이 자부심을 느낄 개폐막식 공연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전승훈 기자
가장 초미의 관심사는 전 세계인의 눈과 귀가 집중될 개폐막식. 논버벌 퍼포먼스 ‘난타’ 제작자로 유명한 송승환 씨(61)가 2015년 7월 총감독에 임명돼 꾸준히 준비해 왔지만 정작 개폐막식 총연출 감독 선정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뮤지컬 음악감독 박칼린 씨가 맡았다가 3개월 만에 사퇴했고,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이 추천한 패션디자이너 정구호 씨도 7개월 만에 중도 사퇴했다.
최순실 게이트 광풍이 불던 지난해 12월 초. 넉 달간 공석이었던 개폐막식 총연출 감독에 연출가 양정웅 씨(49·서울예대 공연학부 교수)가 최종 낙점됐다. 평창 올림픽의 성공에 대한 국제적 우려가 커지자 송 총감독을 도울 ‘구원투수’로 긴급 투입된 것이다.
“문체부 장관 구속, 위기를 기회로”
―지난해 12월 개폐막식 총연출을 제안받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송승환 총감독으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았다. 늘 꿈꾸던 무대였지만 막상 제안을 받으니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뒤늦게 뛰어들었다가 욕만 먹을 가능성도 크고, 개인적으로 올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할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 깊이 고민하다가 수락했다.”
―겨울올림픽 개폐막식 연출을 수락한 이유는….
“1992년도에 프랑스 알베르빌 겨울올림픽 개막식을 TV로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당시 31세에 불과했던 안무가인 필리프 드쿠플레가 총연출을 맡았다. 그의 작품을 보고 올림픽 개막식 같은 메가 이벤트도 예술 작품이 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나도 저런 연출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늘 꿔왔는데, 갑자기 기회가 다가왔다.”
―조윤선 문체부 장관이 구속됐다. 주무부처 장관 부재로 체육행정이 올스톱 됐는데, 개폐막식 준비에 차질이 없겠는가.
1997년 극단 ‘여행자’를 창단했던 양 감독은 국내 연극계에서 의상·음악·무대미술이 결합된 감각적인 미장센과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데 가장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한여름 밤의 꿈’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등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한국적 미학으로 풀어낸 작품으로 해외로부터 많은 초청을 받았다. 그의 대표작인 ‘한여름 밤의 꿈’은 2006년과 2012년 한국 연극 최초로 영국 런던 바비컨 센터와 글로브 극장으로부터 각각 초청받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2년 런던 올림픽,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까지 개폐막식은 늘 수많은 화제를 낳았다. 어떤 올림픽을 롤모델로 하는가.
“베이징부터 시작해 런던, 소치를 거치면서 대규모 볼거리와 최첨단 기술 경쟁이 확대돼 왔다. 많은 분이 우리에게도 그런 것을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브라질 리우는 적은 예산으로도 메시지에 집중하고, 휴머니티가 넘치는 개폐막식을 보여줬다. 우리도 현실에 맞는 규모와 독창적인 내용의 평창만의 폐막식을 준비하고 있다.”
―영국 영화감독 대니 보일이 연출한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선 산업혁명의 태동과 세계대전 같은 역사적 흐름 및 대중문화까지 접목해 세대를 초월한 감동을 주었다. 평창이 세계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양 감독에 따르면 개폐막식은 ‘평화’라는 전체 주제 아래 개막식은 ‘하나 된 열정(Passion Connected)’, 폐막식은 ‘조화와 융합, 넥스트 웨이브(Next wave)’라는 주제로 치러진다. ‘하나 된 열정’은 정보기술(IT)의 발달에 따라 젊은이들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해 서로 기뻐하고, 아파하고, 공감하는 열정이 하나로 연결돼 평화를 염원한다는 설명이다. ‘넥스트 웨이브’는 전통과 현대를 조화하고, 융합해서 만들어내는 새로운 물결이자 새로운 바람이라고 소개했다. 양 감독은 “넥스트 웨이브에는 당연히 한류(Korean wave)도 포함된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가 케이팝만이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자랑보다는 글로벌한 소통 중요”
―장이머우 감독이 연출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나침반 종이 화약 인쇄술 등 중국의 문명을 자랑했다. 소치 올림픽도 강력한 러시아를 꿈꾸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차르 대관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평창도 ‘국뽕’(과도한 애국주의) 이벤트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물론 우리도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한 고유의 문화가 많다. 1988년 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 때는 한국 전통적 이미지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집중해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그러나 21세기 패러다임에서는 소통과 연결이 중요하다. 평창 올림픽 개막식은 우리 것에 대한 일방적인 자랑보다는 글로벌한 소통과 연결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한류 스타와 케이팝은 어느 정도 활용되는가.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에서는 과도하게 아이돌 가수 출연이 많았다는 지적이 있는데….
“한류 스타와 케이팝은 폐막식에서 주로 나올 것이다. 폐막식은 치열하게 경쟁을 펼쳤던 선수들에게 ‘그동안 수고했다’는 의미로 치러지는 즐거운 축하마당이다. 케이팝은 전 세계 음악시장을 바꾼 우리만의 어마어마한 자산이다. 그러나 케이팝이 한국 문화의 전부는 아니다.”
―평창 올림픽 개폐막식의 전체적인 연출 방향은….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 빗댈 수 있는 ‘한겨울 밤의 꿈’ 같은 무대를 상상하고 있다. 뮤지컬처럼 전체의 내러티브 스토리가 있고, 어른들이 보는 한 편의 겨울동화 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겨울왕국’ 같은 디즈니류 판타지는 아니다. 동화적 상상력이 살아 있는 무대라는 뜻이다.”
―도깨비는 안 나오나.
“구체적으로 도깨비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상상력이 가미될 것이다.”
―평창 겨울올림픽 개폐막식의 또 다른 고민은 적은 예산이다. 브라질 리우 올림픽의 개폐막식 총예산은 630억 원이었다. 실제 공연 예산은 베이징 올림픽의 약 20분의 1 수준에 불과했는데도 잘 치러냈다는 평가를 들었다.
“평창 겨울올림픽 개폐막식 예산(533억 원)은 리우보다 적다. 리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어두운 빈민가 이야기를 자신 있게 드러내놓고 재밌게 표현했다는 점이었다. 휴머니티와 아날로그가 살아 있는 새롭고 놀라운 접근이었다. 그러나 리우 올림픽 개막식에도 자세히 살펴보면 3차원(3D) 인터랙션 기술, 키네틱 아트 등 최첨단 기술이 녹아 있다. 우리도 저비용 고효율 테크놀로지를 찾아내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겠다.”
“리우 올림픽보다 개막식 예산 적어”
―개폐막식이 열리는 평창 올림픽 개폐막식장이 올해 9월에 완공될 예정이다. 현장에 가봤을 때 느낌은….
“오각형으로 지어진 평창 올림픽 개폐막식장은 경기장이 아니라 오로지 개폐막식 행사만을 위해 지어졌다. 매머드한 주경기장에 비하면 아늑한 공연장 같은 느낌이 강하다. 뮤지컬적인, 연극적인 효과를 좀 더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다. 현장에서는 3만5000명이 관람하는 그라운드 행사이지만 TV 화면을 통해 전 세계로 중계되는 쇼 무대이기도 하다. 시청자들의 눈에 다가서는 영상적인 측면도 많이 고려하고 있다.”
―대회가 끝난 후 개폐막식장은 어떻게 사용되나.
“부분적으로 해체된 후 올림픽기념관과 전시관으로 사용된다고 들었다.”
―성화 점화 방식에 대한 아이디어는….
“현재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놓고 기술 검토를 하고 있다. 최신 기술을 사용해 깜짝 놀랄 만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싶지만 신기술은 늘 위험이 따른다. 2월의 겨울철 날씨와 바람까지 감안해 테스트를 꼼꼼히 할 예정이다.”
―송승환 총감독과 양정웅 총연출의 역할 구분은….
“뮤지컬을 제작할 때 프로듀서와 연출가의 차이다. 송 총감독은 500억 원이 넘는 예산 집행을 총괄하고, 중요한 콘셉트와 스케줄을 정한다. 총연출은 실제로 보이는 개폐막식의 세세한 부분까지 구현해 내는 역할을 맡는다.”
―전임 연출가였던 정구호 씨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활용되나. 송 총감독의 ‘난타’는 포함되지 않는가.
“사임한 전임 감독의 아이디어는 사용할 수 없다. 개폐막식에 ‘난타’의 구성 요소도 들어가지 않는다. 다만 일반적인 타악은 우리 고유의 음악인 만큼 빠질 수 없다.”
―1988년 올림픽이나 2002년 월드컵에 비해 이번 제작팀은 젊은 편 아닌가. 국제적인 대형 이벤트에 대한 경험 부족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따지면 언제나 이미 경험했던 사람들만 다해야 한다. 프랑스는 불과 31세의 안무가에게 알베르빌 겨울올림픽 개막식 연출을 맡겼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기 마련이다. 60, 70대가 돼서야 첫 경험을 할 수 있는 사회는 비극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