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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형의 SNS 뒤집기] “기다리라” 안내방송에 분노한 온라인 민심

입력 | 2017-01-24 15:16:00


'살고 싶으면 알아서 대처하라!'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온라인에서 통용되는 재난 시 생존공식이다. 온라인 민심은 기존 재난대응시스템에 문제가 없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죽을 때까지 기다리란 말인가?"

"대구지하철 참사, 세월호 참사를 보고서도 아직 깨닫지 못했나?"

최근 열차 내에 울려 퍼진 '기다리라'는 재난 안내방송에 누리꾼은 분노했다. 기관사의 대처가 '매뉴얼대로였다'는 서울메트로 측의 해명은 오히려 분노를 키웠다. 이미 학습된 여러 번의 대형 참사의 영향 때문이다.

22일 오전 6시28분 2호선 잠실역에서 출발해 잠실새내역(옛 신천역) 플랫폼으로 들어서던 서울메트로 소속 2036호 열차가 멈춰 섰다. 10량 열차의 둘째 칸 객차 아래쪽에 달린 주전원장치(전동차 메인 전원 차단 및 공급장치)에 화재가 발생했다. 29분 논란이 된 "차량 고장으로 비상 정차했으니 안전한 차내에서 기다려 달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그러나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모습을 본 승객은 안내방송을 믿지 않았다. 승객들은 수동 레버를 이용해 전동차 문을 열고 하나 둘 자발적으로 대피했다. 기관사가 관제센터 지시에 따라 "즉시 출입문을 열고 대피하라"고 방송한 것은 그로부터 2분 뒤였다. 이미 대부분의 승객이 열차 밖으로 몸을 피신한 뒤였다. 화재 사고 발생부터 피난 방송까지 걸린 시간은 3분.

"열차 안으로 연기가 들어오는데도 아무 조치가 없어 비상문을 열고 나왔다" "별일 아니니 나가지 말고 객차 안에 머물라고 했다"라는 등 온라인에선 사고 당시 목격(체험)담이 쏟아졌다. 이어 누리꾼들의 비판이 뒤따랐다.

안전 전문가들에게 "이번 사고 열차의 안내방송이 적절했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명쾌한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재난대응은 크게 △이상 징후 인지 △확인행동 △상황판단(화재여부) △조치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관사가 첫 번 째 단계에서 기다리라는 안내방송을 했다면 다행이지만 화재를 확인한 뒤였다면 얘기가 달라진다"고 지적했다.

윤명오 서울시립대 재난과학과 교수는 "1차적으로는 안전 리더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맞다"며 "다만 기관사가 화재를 인지하기 전에 연기가 나고 있는 객차 안의 승객이 대기 안내를 무시한 채 곧바로 피난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변수가 많은 사고 현장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잘잘못의 판단을 명확하게 하긴 쉽지 않다.

그러나 안전 전문가들은 재난대응시스템이 나아가야할 방향성에 대해 훈련된 시민(재난피해 당사자)을 늘려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온라인 민심과도 맞닿아 있는 대목이다.

일본의 경우 고교생 때부터 각종 재난 시 피난 리더가 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안전 교육(훈련) 시스템을 마련한다. 강욱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안전은 스스로가 지키는 것이고 국민은 평상시부터 재해대응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 일본 방재시스템의 기본 철학"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역시 재난관리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 시민들을 에게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이들을 조직화하고 있다. 정부는 재난 시 이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사고 이후 서울메트로 측으로부터 받은 '비상대응 현장조치매뉴얼'을 살펴봤다. 그곳에 승객은 철저히 기관사와 관제센터의 지시를 받는 관리대상자로 분류돼 있었다. '승객이 임의로 출입문을 개방하는 것을 금지하는 방송 실시' 등 통제 사항만 적혀 있을 뿐, 승객의 자발적인 참여를 선택지의 하나로 고려하진 않았다.

김태호 서울메트로 사장은 23일 "(안내)방송 매뉴얼을 전면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등 안전 선진국의 대응 매뉴얼을 참고하겠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앞으로 나올 서울메트로의 신 매뉴얼은 지금 온라인 민심이 기존 재난대응시스템에 제기한 여러 물음에 만족스런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