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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불발된 인터뷰

입력 | 2017-01-25 03:00:00

2017년 1월 24일 화요일 맑음. 119. #236 Whitney ‘Polly’(2016년)




미국 밴드 휘트니의 앨범 ‘Light Upon the Lake’ 표지.

 16일 밤, 구급차에 실려 가면서 도플러 효과에 대해 생각했다.

 발단은 이렇다. 그날 첫 내한공연을 여는 미국 밴드 휘트니를 인터뷰하기 위해 허겁지겁 공연장 계단을 오르다 그만 발이 걸려 앞으로 넘어졌다. 모든 충격을 입술과 코 사이의 5cm쯤 되는 살갗으로 흡수해 버렸다. 열상. 계단참에 사방으로 혈액이 튀었다. 마침 계단을 내려오던 청년들의 도움으로 119 구급차에 오르게 됐다.

 목숨을 걱정할 일은 아니었지만 구급차 안에 어정쩡하게 누우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온통 새하얀 차내에 날 지키는 사람은 구급대원 한 사람. 후면의 차창을 내다보니 도시의 불빛들이 내게서 한없이 멀어지고만 있었다. ‘만일 먼 훗날 내가 사고나 급성질환으로 구급차 안에서 숨을 거둔다면?’ 구급차가 진행하는 역방향으로 누워 후퇴해 가는 세상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사후세계로 향할 것이다. 갑자기 슬픔 같은 것들이 의식의 해안에 와락 떠밀려왔다 떠밀려가기를 반복했다.

 인물에게 다가서는 사이렌 소리는 실제 음보다 높게 들린다. 멀어지는 소리는 낮게 들린다. 파장이 왜곡돼 생기는 도플러 효과 때문이다. 달콤 쌉싸래한 휘트니의 노래들이 생각났다.

 휘트니는 비틀스나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조금 맥없지만 아름다운 발라드들에 자신들의 고향인 시카고의 솔(soul)을 결합시킨 것처럼 고풍스럽게 예쁘장한 음악을 들려준다.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Polly’의 뮤직비디오에서 주인공은 거리를 걸으며 불행한 것들과 자꾸만 마주친다. 약물에 찌든 소녀, 술상 위에 엎어진 아저씨, 죽은 새….

 영화 ‘시리어스 맨’은 어떤가. 주인공 래리는 계속되는 불행과 불운에 괴로워하며 몇 명의 랍비를 찾아가는데 그들은 주차장의 비유나 이교도의 치아 이야기를 들려주며 하나 마나 한 조언만 늘어놓는다. 반복해 등장하는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Somebody to Love’의 가사처럼 래리는 이웃집 여인과 의미 없는 정사를 나눈다.

 도플러 효과와 함께 멀어지는 세상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구급차는 병원 응급실 앞에 멈춰 섰다. 휘트니와의 인터뷰는 어떻게 됐을까. 당연히 불발됐다. 멤버들을 보기는 봤다. 계단에 걸터앉아 멍한 눈으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을 때 마침 멤버들이 계단참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부서질 듯 여린 아름다움의 노래들로 기억되는 휘트니의 멤버에게 딱 한마디 들었다. 사방에 튄 피를 보고 놀라서 그가 외친 감탄사. ‘Oh, s×××!’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