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해 음식평론가
제일 자주 받는 질문이 “제사 음식은 어떤 걸로, 어느 정도 차리면 좋으냐”는 것이다. “남의 제사상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없다”고 눙친다. 제사상은 각자 형편 따라 차릴 일이다. 집안 문제다. 남이 참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엉터리 이론도 있다.
홍동백서(紅東白西)도 근거 없는 표현이다. 붉은 과일은 제사상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둔다는 뜻이다. 녹색의 수박, 노란색 참외, 붉거나 푸른 사과, 노란 귤은 어디에 둘 것인가. 의미 없는 표현이다. 제사는 정성이다. 형식만 따지고 정작 중요한 의미는 잃어버린 것이 문제다. 상(喪)은 고인의 신분에 맞추고, 제사는 후손들의 신분에 맞춘다는 표현이 있다. 제사는 후손들의 경제적 정도에 맞춰야 한다. 정성이 으뜸이다.
제사가 화려해진 것은 신분제도의 붕괴와 관련이 깊다. 조선 후기 신분제도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양반 수가 급격히 늘었다. 갑오개혁(1894년)으로 신분제도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도 반상에 대한 의식은 남아 있었다. 여전히 “우리 집안은…”이라고 뻐기는 이가 많았다. 결혼식, 초상, 제사 등을 통해 자신들의 부와 신분을 과시할 필요가 있었다. 많은 사람이 이들의 화려한 행태를 따라갔다. 제사 음식이 화려해진 이유다.
좌포우해(左脯右해)는 기록에 남아 있다. 좌포우해와 우포좌해(右脯左해) 중 어느 쪽이 정확한지 묻는 내용이다. 좌포우해는 왼쪽에 고기 포를, 오른쪽에 육장(肉醬·젓갈)을 둔다는 뜻이다. 육장은 고기 장조림과 비슷하지만 다른 음식이다. 해(해·육장 등 젓갈)와 음료 식혜(食醯)를 혼동하기도 한다. ‘오른쪽에 식혜를 둔다’는 표현도 있다. 엉터리다. 식혜는 단술(감주)이다.
유교 사회에서 귀하게 여기는 제사 형식은 모두 네 가지다. 천신(薦新)은 새로 난 작물들을 조상에게 먼저 올리는 것이다. 궁궐의 종묘(宗廟)천신과 가정의 가묘(家廟)천신이 있었다. 천신은 거의 사라졌다. 사시제(四時祭)는 사계절에 한 번씩 지내는 제사다. 제사와 비슷한 상차림을 마련했다. 역시 사라졌다. 오늘날 사시제를 모시는 경우는 드물다.
황광해 음식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