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정병수 시인
시인 정병수 씨는 “건강관리를 잘해 에이지슛(age shoot·18홀 한 라운드에서 자신의 나이 이하 타수를 기록하는 것)을 꼭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안영식 전문기자
그런데 멈춰 있는 공을 치는 골프는 왜 어려울까. 일반적인 대답은 ‘잡념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정병수 씨(67)는 시인답게 재치 있는 답변을 덧붙였다.
“죽어있는 것 살리는 게 더 어렵지 않나요?”
1995년 한 신문에 연재된 ‘이어령의 다시 읽는 한국의 명시’에 감명 받은 그는 2002년 시인으로 등단했다. 요즘은 평창문화포럼 부설 시울림 아카데미에서 시 쓰기와 낭송을 가르치고 있다. 그가 외우고 있는 명시는 200여 편. 그중 50여 편은 시간, 장소를 불문하고 낭송할 수 있고 나머지는 한 번만 읽어 보면 바로 외울 수 있다고.
정 회장은 39세 때 골프를 시작한 늦깎이 골퍼다. 하지만 각종 기록이나 라운드 일화는 그의 이력만큼이나 화려하다.
입문 4년 만에 안정적인 로(low) 싱글 골퍼가 된 그는 언더파보다 더 어렵다는 노보기 플레이를 5차례나 했다. 그중 3차례는 18홀 모두 파 세이브, 언더파 노보기는 송추CC(버디 3, 파 15) 등에서 2차례 기록했다. 한일CC에서는 한 라운드 이글 2차례도 기록했는데 50개 이후부터는 이글 개수를 세지 않고 있다.
동반자에게 핸디를 주는 대신 클럽 4개(3번 우드, 7번 아이언, 피칭웨지, 퍼터)만 사용해 78타를 친 적도 있다. 캐디가 “클럽 잘못 갖다 줬다고 투정하는 고객에게 할 말이 생겼다”며 미소를 짓더란다.
그의 베스트 스코어는 1998년 아시아나CC 서코스에서 열린 광주일고 총동문 골프대회 때 기록한 5언더파 67타(버디 8, 보기 3). 당시까지 순수 아마추어가 아시아나CC에서 기록한 최소타인데, 전반에 4개홀 연속 버디를 낚으며 개인전 3연패를 달성했다. 이후 각종 시상에서 한동안 제외됐다고.
정 회장은 1995년 아시아나CC 동코스 6번홀(130m)에서 기록한 덩크 홀인원(공이 그린에 한 번도 튕기지 않고 홀 안으로 곧장 들어가는 것)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바로 뒤 팀이 금호그룹 박정구 회장이셨기에 플레이어가 아닌 직원 여러 명이 티잉 그라운드에 나와 있었는데, 엄청난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50대 중반까지 챔피언티에서 핸디캡 2를 놓고 남자 프로골퍼들과 샷 대결을 한 그에게는 박세리 프로와의 동반 라운드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정 회장이 생각하는 골프의 핵심은 무엇일까.
“중국의 사서(四書) 중 대학과 중용에 나오는 신독(愼獨)을 언급하고 싶다.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과 언행을 조심한다는 뜻이다. 골프는 매너 운동이고 스스로가 심판인 운동이다. 골프가 스포츠로서 존립하려면 신독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이와 관련해 정 회장은 “자신한테는 엄격하되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 군자(君子)의 도리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고수라면 그날의 하수가 즐거운 라운드를 할 수 있도록 룰 적용에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 그가 지은 골프 관련 시조 한 수 낭송을 부탁했다.
‘녹음이 우거지니 새소리도 고와라/파르라니 깎은 잔디 손짓하며 부르고야/에헤라 채 둘러메고 새벽길 나서보자.’
안영식 전문기자 ysa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