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산업부 기자
‘새 대통령 부인의 옷에 관여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이다. 그간 대통령 취임식 의상을 디자인하는 것은 영광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성적, 인종적 차별 발언은 디자이너들의 반발을 샀다. 마크 제이컵스 등 인기 디자이너는 대통령 부인의 옷을 만들지 않겠다고 밝혔다.
논란 속에 멜라니아 여사는 20일(현지 시간) 랠프로런을 택했다. 미국 디자이너 랠프 로런은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다. 게다가 힐러리 클린턴 전 민주당 대선 후보의 협조자로도 유명하다. 이날 취임식에 참석한 클린턴도 랠프로런의 하얀색 바지 정장을 입었다. 치열하게 싸우던 양당이 미국적 가치의 상징인 랠프로런으로 ‘대동단결’한 것처럼 비쳤다.
‘패셔니스타’ 미셸 오바마 전 대통령 부인이 백악관 입성 후 첫 1년 동안 만들어낸 패션산업의 부가가치가 27억 달러(약 3조1563억 원)에 달한다고 2010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가 보도한 바 있다. 미국 패션계가 미셸 여사와의 이별을 얼마나 아쉬워했을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미심쩍게 보던 트럼프가(家) 여성의 영민한 ‘패션 정치학’에 미 패션업계는 다시 기대를 걸기 시작했다.
미 대통령의 취임식을 보고 있자니 4년 전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이 떠올랐다. 당시 한국의 패션담당 기자들도 새 대통령의 옷에 주목했다. 첫 여성 대통령으로서 그가 택한 옷에는 그만의 철학과 메시지가 담겨 있을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옷은 누구 작품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한국 패션계 인사들에게 물었더니 “짐작도 안 간다”는 말이 돌아왔다. 패션은 개인의 취향이자 이를 외부에 표현하는 창인데 왜 비밀에 부칠까 궁금했다. 박 대통령의 ‘스타일리스트’가 최순실이었다는 것이 드러났을 때, 충격과 함께 ‘그래서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 패션에 메시지를 심은 주인공이 최 씨였으니 어떻게 공개할 수 있었을까.
대통령의 옷을 취재하던 중에 한 국내 원로 디자이너가 말했다. “대통령이 한국 디자이너 옷을 입었다고 해외에 자랑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대통령이 자국 패션산업을 위해 홍보대사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뜻에서 한 말이다. 여기에 전략적 메시지까지 담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것이다.
김현수 산업부 기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