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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장택동]정치의 계절, 口禍之門

입력 | 2017-01-25 03:00:00


장택동 정치부 차장

  ‘최순실 게이트’가 한창이던 지난해 11월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검찰 수사에 응할 것을 촉구하며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박 대통령의 퇴임 후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고 했다. ‘우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의 안위를 보장하거나 보장하지 않는 게 가능한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죄가 있으면 벌을 받고 없으면 안 받는 게 법치국가다. ‘전직 대통령 처벌 금지법’이라도 만든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대통령이든 정당이든 특정인의 처벌 여부를 결정할 방법은 없다.

 당시는 최순실 게이트에 불이 타오를 때여서 정치적 수사(rhetoric)이겠거니 하고 넘겼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기 위해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선 주자들의 발언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대선 주자들의 말은 ‘현실성 있는 약속’으로 인식된다.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지금 한 말들이 빚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고, 말을 바꾼다면 소모적인 논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대선 주자는 의견이나 희망사항이라고 해도 쉽게 이야기해선 곤란하다. 또한 대선 주자들의 말은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을 따져 볼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그런데 대선 주자들의 일부 발언은 위험하거나 너무 가벼워 보인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12일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구속으로 재벌체제 해체의 출발선에 서야 한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정치인이, 특히 대선 주자가 특정인을 구속하라 마라 요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 시장이 대통령이 된다면 이 부회장을 구속시키기 위해 사법부에 압력이라도 행사할 것인가, 아니면 대통령이 되기 전에 한 말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할 것인가.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누구를 구속시키고 감옥에 보내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런 대통령이 이끄는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인가”라고 지적한 것은 설득력이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17일 “홀로 하려니 금전적인 것부터 빡빡하다”며 기존 정당 중 한 곳에 입당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실망스러운 발언이다. 조직이 없는 반 전 총장이 자금 문제 때문에 대선 준비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방까지 따라온 기자들과의 편안한 자리였다고 해도 입당 의사를 묻는 질문에 돈 이야기부터 꺼낸 것은 경솔했다. 반 전 총장이 대통령이 된다면 이런 인식 아래 입당한 여당과 어떤 하모니를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최근 출간한 대담집에서 군 복무기간 단축을 “1년 정도까지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공약이라기보다는 의견에 가까운 뉘앙스였지만 대선 주자이기 때문에 말의 무게가 다르다. 비판이 제기되자 문 전 대표 측은 “군의 첨단화, 정예화, 현대화, 과학화를 전제로 한 것”이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그렇다면 문 전 대표는 복무기간 단축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군을 첨단화, 정예화, 현대화, 과학화하기 위한 방안을 먼저 밝혔어야 했다. 그랬다면 포퓰리즘 논란은 없었을 것이다.

 아직 대선 레이스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았다. 조기 대선이 현실화된다면 짧은 시간 안에 경선과 대선 본선이 실시될 것이고, 대선 주자들은 조급한 마음에 실현하기 어렵거나 정제되지 않은 말을 ‘일단 던져놓고 보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그렇게 해놓고서는 ‘언론이 취지를 잘못 전했다’고 변명하거나 ‘말꼬투리 잡지 말라’고 반격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스스로 대통령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국민은 더 이상 말 때문에 혼란을 빚을 수 있는 대통령을 바라지 않는다. 구화지문(口禍之門·입은 재앙의 문)이라고 하지 않던가.
 
장택동 정치부 차장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