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해 논설위원
‘盧 보호 못했다’ 비판받아
2002년 12월 대통령에 당선된 노무현은 민정수석비서관에 문재인을 발탁해 고위직 인사검증과 친인척 및 측근 관리, 공직기강 업무를 맡겼다. 노 대통령의 신임이 워낙 두터워 청와대에서 문재인은 ‘왕(王)수석’으로 불렸다. 당시 문재인은 “앞으로도 정치할 생각은 없다”고 입버릇처럼 되뇌었다. 하지만 부산에서 좋은 변호사로 불리던 문재인이 국정 전반을 살피는 민정수석 업무에선 후한 점수를 받지 못했다. 호남에선 부산 출신들이 청와대 자리를 다 차지했다고 비난했고, 모교(母校)인 경남고 출신들은 동문도 챙기지 않는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노무현 청와대 5년,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문재인의 국정 경험은 이후 소중한 정치적 자산이 됐을 것이다. 2009년 5월 갑작스러운 노무현의 서거는 정치에 관심 없다던 문재인의 정치적인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하지만 2012년 대선 때까지만 해도 문재인의 권력 의지는 약했다. ‘대선 재수생’이 된 이번엔 달라 보인다. 잇따른 정책공약 발표는 준비된 후보라는 인상을 준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위안부 문제를 놓고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려는 고민도 엿보였다. 군 장성과 외교관 출신들이 싱크탱크에 포진한 것도 예전과 다른 모습이다.
그럼에도 문재인이 여전히 친노(親盧) 친문(親文) 패권주의에 갇혀 있다는 당 안팎의 비난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이 때문에 표의 확장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문재인이 신동아 2월호 인터뷰에서 “친문 패권이란 말은 문재인을 공격하는 프레임으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라고 강변했지만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참모들에 대한 주변의 따가운 시선은 여전하다.
독선적 참모가 문제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