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명문대라면 어떨까. 2015년 EBS 다큐멘터리 ‘시험’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여럿 배출한 미시간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강의내용 필기와 학점은 상관관계가 없었다. 한 학생이 “받아 적는 것은 생각을 차단한다. 설명을 받아 적는 대신 떠오르는 생각을 적는다”고 말한 것이 기억 속에 생생하다. 올 1학기부터 서울대도 받아쓰기식 학습 풍토를 바꾸는 실험을 할 예정이다. 일부 교양과목에서 학점 대신 ‘합격·불합격’ 평가방식을 시범 도입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받아쓰기’가 교실을 벗어난 뒤에도 계속된다. 사장님의 지침은 간부들이, 장관님 지시는 실·국장이 받아 적는다. ‘박근혜 청와대’는 그 정점에 있었다. 국무회의나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대통령 말씀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심각한 표정으로 받아 적는 장면은 뉴스의 단골 영상이다. 구속된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은 ‘모범생’이었나 보다. 대면보고를 꺼리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통화 전용으로 마련된 휴대전화를 통해 2년간 지시받은 내용을 빠짐없이 받아 적은 수첩이 510쪽, 17권에 이른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