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뱅 보쟁, ‘오감’
제아무리 귀하고 값비싸다고 해도 그림 속 정물들은 모두 죽은 사물입니다. 만개한 꽃은 대지가 아닌 화병에 꽂혀 있습니다. 진귀한 과일은 나무가 아닌 식탁에 놓여 있습니다. 생명의 땅을 떠난 사물들은 더 이상 꽃 피우고, 열매 맺을 가능성이 제거된 존재들이지요. 생명력을 소진한 사물들을 한군데 모아 놓은 정물화는 인생무상과 죽음을 깨닫게 하는 데 적합한 미술 장르였어요.
뤼뱅 보쟁(1610∼1663)도 ‘오감’이 즐거운 볼거리로 소비되길 원치 않았습니다. 격조 높은 정물화로 삶과 죽음에 관한 준엄한 교훈을 전하고자 했지요. 그런데 그림 속 정물들은 화가 의도와 어떤 관계도 없는 평범한 실내 소품들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각각 정물에 담긴 뜻은 심오했습니다.
화가는 한때는 감각을 사로잡았으나 언젠가 끝날 연주와 게임을 그림 앞쪽에 위태롭게 배치했습니다. 반면 영원히 영혼을 밝힐 빵과 포도주 성찬과 세 송이 카네이션이 상징하는 거룩한 사랑을 뒤편에 두었지요. 관객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려는 것일까요. 그림 속 거울은 욕망 세계와 절제 세계 어느 곳도 비추지 않은 채 걸려 있습니다.
집 근처에 문을 연 창고형 할인매장을 방문했습니다. 구매자 오감을 간단히 제압한 공산품들이 빌딩처럼 서 있는 광경에 압도되어 매장 입구에서 발길을 돌렸습니다. 회원증 발급 후 들어갈 수 있고, 구매 물품과 영수증을 확인 대조한 후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불편하던 참이라 결정은 수월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진입로를 몇 번이나 놓쳤습니다. 매장 안 상품들에 그림 속 정물들이 겹쳐 머릿속이 꽤나 복잡했습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