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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이건혁]회계법인과 한국경제

입력 | 2017-01-31 03:00:00


이건혁 경제부 기자

 주식 투자는 프로야구단이 선수를 영입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투자 대상 기업의 가치를 수치화한 데이터(재무제표)를 토대로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 구단은 타율, 출루율, 방어율, 승리기여도(WAR) 등 다양한 수치에 근거해 선수 영입 여부와 몸값을 정한다.

 둘 사이의 차이점은 신뢰도에 있다. 선수의 성적은 경기를 통해 쌓인다. 그만큼 신뢰도가 높다. 반면 회사의 재무제표는 작성 과정이 공개되지 않는다. 따라서 재무제표를 확인하고 보증해 줄 제3자가 필요하고, 현재 이 역할을 회계법인이 맡는다.

 아쉽게도 국내 회계법인들은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5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0부는 STX의 분식회계로 피해를 본 소액주주에게 “STX 등이 약 49억 원을 배상하라”라고 판결했다. 회계법인이 감사 의무를 소홀히 해 (STX가 만든 허위 보고서에) ‘적정’ 의견을 낸 것도 주요 판단 근거 중 하나로 제시됐다. 대우조선해양 사태는 회계법인의 부실 감사가 가져다준 폐해의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12월 대검찰청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은 회계사들이 적극적으로 분식회계에 가담했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소액주주는 1000명이 넘고,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의 피해도 수천 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회계법인들은 이런 일들이 빈발하는 근본 원인을 돈에서 찾는다. 원가에 비해 낮게 책정된 회계 감사 비용 탓에 인력을 충분히 투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젊은 회계사들이 일과 책임만 많을 뿐 보수는 적다며 감사 업무를 기피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회계감사의 핵심인 독립성을 저해하는 요인도 돈에서 찾는다. 낮은 감사 비용을 컨설팅, 자산 실사 등 비감사 영역 수임료로 메우려다 보니 회계감사 대상 회사와 회계법인 사이에 ‘갑을 관계’가 생겼다는 것이다.

 금융 당국은 업계의 요구를 수용해 22일 ‘회계 투명성 및 신뢰성 제고를 위한 종합 대책’이라는 긴 이름의 대책을 내놨다. 분식회계 위험성이 큰 기업의 감사인 직접 지정, 대기업 등에 대한 선택 지정제 도입 등이 핵심이다. 회계사들은 “감사를 따내기 위한 가격 할인 경쟁이 줄면서 자연스럽게 보수가 올라가는 효과가 생길 것”이라며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감사 보수가 현실화되면 회계감사가 제대로 이루어질 것이란 회계사들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돈이 직업윤리를 담보해 준다고 믿기 어려워서다. 고액 연봉을 받으면서도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는 우리 주변에 차고 넘친다.

 정부가 회계법인들이 원하는 대로 정책 환경을 바꾸기로 결정한 만큼 이제 공은 회계법인들로 넘어갔다. 환경이 좋아지면 나아질 것이라고 얘기한 대로 직업윤리를 획기적으로 높일 대책을 내놔야만 한다. 회계법인은 ‘자본주의의 감시견(watchdog)’이라 불린다. 이제라도 이름에 걸맞은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변신해야만 한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이건혁 경제부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