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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컬처]시어른이 업무분장표 만들어 역할 분담하니 “헬 명절, 아웃!”

입력 | 2017-02-01 03:00:00

변하는 세태, 명절 신풍속도




‘시어머니 vs 며느리’ 신경전으로 치달았던 명절 스트레스도 옛말이다. 가족 형태와 기성세대의 가치관이 변하면서 며느리들의 명절 나기에도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동아일보 DB

《 트랜스 인종 실험으로 외계인에서 지구인으로 변신해 멀쩡히 살아가던 에이전트 35(김정은 기자)가 본부의 명령으로 이달부터 외계인 무리에 합류했다. 지구인들이 설을 맞아 고향으로 뿔뿔이 흩어지던 지난 설 연휴, 별 HD164595 출신인 에이전트 35, 에이전트 31(장선희 기자), 에이전트 9(이지훈 기자)는 본부로부터 ‘한국 며느리들의 명절 신풍속도’를 파악해 보고하라는 명을 받는다. 서둘러 명절 대이동의 ‘핫스폿’으로 꼽히는 서울역에 집합한 세 명의 요원. 역사 내 커피숍에 쭈그리고 앉아 주변의 신혼부부부터 노년층 부부까지 그들의 명절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는데…. 》
  

○ 명절 스트레스의 소멸 또는 진화, 정답은?

 결혼 3년 차인 직장인 김민정 씨(35)는 명절 일주일 전부터 남편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류의 유치한 질문을 늘어놓는다고 한다. 이게 웬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요원들이 알아본 김 씨의 남편 최모 씨(39)의 사연이다. “부모님이 5년 전 황혼 이혼을 하셨어요. 워낙 안 좋게 헤어지셔서 아직도 서로를 원수로 생각하시죠. 매번 명절 때마다 어느 집에 먼저 가느냐를 놓고 두 분이 신경전을 벌여요. 휴….”

 꽤나 심각한 고민이다. 이들 부부의 거주지는 서울, 시아버지는 전북 김제에, 시어머니는 부산에 거주 중이다. 게다가 김 씨의 친정 부모는 강원 속초에 산다. “이번 설 연휴는 주말 끼고 고작 4일이었잖아요. 4일 동안 무려 전국 세 곳을 뛰었어요. 명절 때마다 무슨 ‘전투여행’ 하는 기분이에요.”(김 씨)

 황혼 이혼이 늘면서 김 씨와 같은 사례는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주부들의 인터넷 사랑방으로 불리는 네이버 카페 ‘레몬테라스’ ‘맘스홀릭’ 등에선 양가 부모가 이혼해 명절 때마다 곤혹을 치른 후일담이 적지 않았다.

 요원들이 지구인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 때 뜻밖에도 다른 사례를 만났다. 워킹맘 안초롱 씨(36)였다. 그는 “‘헬 명절, 헬 시댁’은 나와 상관없는 말”이라며 “시아버지 덕분에 명절 스트레스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그녀의 시아버지는 명절 때마다 ‘가족별 명절 업무 분장표’를 만든다. “시어머니, 저, 남편, 형님, 시아주버니 등에게 아버님이 각자 업무를 배정해 주세요. 아들 며느리 시부모 너 나 할 것 없이 똑같이 각자 하나씩 일을 하다 보니 불만은 없어요.”

 이쯤 되니 요원들은 헷갈린다. 과거 기록상 단순히 ‘시집살이’로 대표되던 명절 스트레스가 소멸되거나 한 단계 진화한 모양새다. 전문가의 분석이 필요했다.

 김민정 씨의 사례에 대해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황혼 이혼 등으로 다양화된 가족 형태와 귀성이라는 옛 행동규범이 부딪히면서 나타난 과도기적 현상”이라며 “가족 형태의 다양화는 어쩔 수 없는 추세다. 이에 맞는 규범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승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가족·다문화센터 선임연구원은 안초롱 씨의 사례에 더욱 관심을 보였다. “전통적인 역할을 요구하는 기성세대와 새로운 가족 역할을 요구하는 신세대 간의 역할 갈등이 여전히 팽배한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 단계를 뛰어넘어 서로 절충점을 찾아가는 수평적인 가정형태도 최근 들어 많이 늘었죠.”(홍승아)



○ 시어머니 대신 시할머니 스트레스

 고령화 시대를 맞아 새롭게 등장한 명절 스트레스 증후군도 찾아볼 수 있었다. 주부 2년 차 이정연 씨(33)는 명절 때마다 시어머니가 아닌 시할머니 때문에 스트레스를 한 아름 이고 집에 돌아온다. “시어머니가 ‘웰컴 투 시월드’ 같은 프로그램을 즐겨 보신 뒤로 깨어 있는 시어머니를 자처하며 친구처럼 며느리를 대하려고 해요. 문제는 88세의 시할머니죠. ‘시부모 봉양을 잘해야 남편 일이 잘 풀린다’ ‘나 젊을 땐 시부모 그림자도 안 밟았다’ ‘나 죽기 전에 증손자 3명만 낳아주면 소원이 없다’는 말을 무한 반복하세요.”(이 씨)

 음…. 외계인인 요원들이 느끼기에도 심각한 문제다. 이 씨에게 위로가 될까 싶어 충남대 가정의학과 김종성 교수팀이 대한가정의학지에 발표한 논문과 서울 영등포구에서 진행하는 ‘명절증후군 힐링 캠프 상담실’ 자료를 슬쩍 건넸다. “정연 씨, 김 교수팀의 논문에 따르면 기혼 여성이 명절에 받는 스트레스를 돈으로 환산하면 약 1만 달러, 우리 돈으로 1163만 원의 빚이 있을 때 느끼는 정도와 같다고 합니다. 명절증후군 힐링 캠프 상담실을 추천드려요.”(에이전트 일동)
 
김정은 kimje@donga.com·장선희·이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