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31일 화요일 흐림. 괘종시계. #237 Jean-Michel Jarre ‘Oxyg`ene, Pt. 17’(2016년)
장미셸 자르의 신작 ‘Oxyg`ene 3’ 표지.
꼬마였을 때 일이다. 자정은 괘종의 추에 올라탄 채 검은 밤을 몰아 엄습했다. 꽤나 긴 간격으로 울리던 열두 차례의 타종. 그 소리가 교교한 집 안 구석구석에서 메아리를 호출했으니 타종의 연쇄는 시간이 아니라 광활한 밤의 세계, 공간을 가로질러 다가오듯 느껴졌다.
오후 9시에는 괘종보다 정확하고 살벌한 것이 집 안에 들어왔다. 오리엔트, 삼성, 아남의 시곗바늘이 직각을 이루면 나타나던 각하의 영상.
괘종시계가 사라지고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뉴스데스크 엔딩의 타자기 소리에 뭔가 더욱 미래적인 음악이 섞여들었다. 바로 프랑스 전자음악가 장미셸 자르의 ‘Equinox, Pt. 4’다. ‘Equinox’(1978년)는 ‘Oxyg`ene’(1976년)과 함께 자르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Oxyg`ene’으로 자르는 살가운 노래 한 자락 없는 전자음악 연주 음반을 1200만 장이나 파는 진기록을 세웠다. 자르의 음표들은 기계에서 나온 캐러멜 덩이들 같다. 우수에 젖은 분산화음에 결합된 우주적 공간감이 환상적이다.
자르는 우리 나이로 올해 칠순이 됐다. 여전히 현역이다. 근작 ‘Electronica’ 시리즈를 다음 달 열릴 프랑스 ‘음악의 승리상’과 미국 그래미어워드에서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앨범 후보에 나란히 올렸다. 같은 부문 후보에 오른 DJ보다 자르는 마흔세 살이나 많다.
노익장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말에 자르는 ‘Oxyg`ene’의 마지막 장을 40년 만에 완성했다. 2편 격인 ‘Oxyg`ene 7-13’(1997년)에서만도 20년이 흐른 시점이다.
새로 쓴 7곡으로 이뤄진 신작 ‘Oxyg`ene 3’는 자극적인 멜로디 대신 섬세한 강약과 입체감으로 승부한다. 스피커로 들어야 그 드라마를 더 잘 느낄 수 있다. 대미를 장식하는 ‘Part. 19’와 ‘Part. 20’은 백미. 40년 전의 테마를 잠시 내비친 뒤 심연의 표면을 스치며 미세한 충돌 음향을 내던 전자 음표들은 무거운 옷자락을 끄는 메이저 화성과 함께 끝내 침묵을 향한다. 항해란 언젠가 끝나게 돼 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