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의 영정과 유품을 모시고 보여주는 길상사 안 ‘진영각(眞影閣)’. 스님의 유골은 오른쪽에 보이는 매화나무 아래에 안치됐다.
조성하 전문기자
당시엔 별 감흥이 없던 매화차. 하지만 스님께서 일부러 불러 나누신 데는 뜻이 있었다. 한참 후에야 그걸 깨친 게 아쉬울 뿐이다. 그건 ‘캐논(Canon)’이란 카메라의 그 이름을 추적하던 중에서였고 핵심은 관세음(觀世音)보살이다. 캐논은 관세음을 줄여 부르는 ‘관음(觀音)’의 일본어 발음 ‘간논’에서 왔다. 1930년대 작명 땐 ‘콰논’이던 게 1947년에 이렇게 정착됐다. 세음이란 ‘세상의 소리’ 즉 ‘중생의 기도 소리’다. 그리고 이건 바다 한가운데 보타낙가산의 관세음보살이 들어준다.
그런데 이 보살님, 기도를 귀로 듣지 않는다. 눈으로 본다. ‘들을 청(聽)’의 청세음이 아니라 ‘볼 관(觀)’의 관세음이다. 그 이유,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믿는 중생의 무지에 대한 경종이자 그래도 존재하는 진리에 대한 웅변이다. 캐논은 이 점에 착안해 택한 이름이다. 어떤 기도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찾는 관세음보살 이미지의 이 스마트한 차용, 눈에 보이지 않는 심상(心想)까지 담아내겠다는 강력한 다짐이다. 하이브랜드 지향 의지로 이보다 더 확실한 표현이 있을까 여겨지는 탁월한 작명이다.
매화는 사군자(四君子·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중 하나다. ‘완전한 인격체’ 군자의 네 가지 덕목 중 하나를 상징하는데 그건 시련과 희망, 성취다. 모진 추위도 마다않고 피는 매화. 그런데 봄꽃이 아니다. ‘봄을 알리는’ 꽃이다. 열매도 맺는다. 사군자 중 결실을 이루는 것, 오직 이 매화뿐이다. 그날 길상사의 한옥은 따뜻했다. 방 안 온돌은 뜨끈했고 남향받이 미닫이문의 한지 창으론 따사로이 햇볕이 스몄다. 게서 스님은 매화차를 내시며 군자향(君子香)을 이르셨다. 삶의 지향(志向)이 이와 달라서는 안 됨을 에둘러 말씀하신 듯하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날이 내겐 마지막이었다. 입적(2010년) 때까지 다시는 뵙지 못했으니.
스님은 매화차를 나누시던 그 방에서 하직하셨다. 진영과 유품이 모셔진 진영각이란 당우다. 며칠 전 나는 거길 찾았다. 석 달 이상 연이은 국정 농단 수사와 재판, 촛불집회와 대항 시위에 대권 장악에만 혈안이 된 정치권의 뻔뻔한 잰걸음…. 그런 소란에 찌든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파. 그런데 게서 뜻밖의 광경을 마주쳤다. 매화차에 꽃을 내줬던 그 나뭇가지에 돋은 꽃눈이다.
나무는 스님 유골이 안치된 곳에 친구처럼 서있다. 그리고 가지엔 눈이 돋아 있었다. 그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스님을 뵌 듯해서다. 나라가 끝도 없는 수렁으로 빠져드는 와중이라 스님 빈자리가 너무도 커 보여 더 그랬다. 스님이 계시면 뭐라 말씀하실까. 눈 돋은 가지를 가리키며 이렇게 일갈하지 않으실까. 아무리 분탕질을 해도 세상 질서는 어김없으니 제각각 할 일에 충실하라고. 어쩌면 매화차를 내실지도 모르겠다. 악취에 코를 묻지 말고 귀로 듣듯 진정으로 치열해야 볼 수 있는 맑고 향기로운 진리를 향해 정진하라는 뜻을 담아. 허물 들추기에 진력하기보단 혼탁한 물을 맑게 정화시키는 연꽃같이 살라고. 3주 후(22일)는 스님의 열반 7주기 기일(음력 1월 26일)이다.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