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환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트럼프 취임 후 백악관은 북한 미사일에 대비한 최첨단 미사일방어체계(MD) 개발을 주요 국방 기조로 제시했다. 여기에다 트럼프는 선거운동 기간 동맹국들에 대해 더 많은 분담을 요구하는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했다. 매티스가 첫 해외 순방지로 한일 양국을 택한 것은 중국을 견제하고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을 강화하자는 것임은 분명하다. 이 때문에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조기 배치 문제뿐 아니라 일본의 MD 구축, 방위비 분담 문제 등이 주요 논의 대상이 될 것이다. 게다가 ‘하나의 중국 원칙’ 불인정 등과 관련한 미국의 정책이 동북아 및 아태 지역 안보 문제와 어떤 연관성을 가질 것인지도 제기될 수 있다.
방위비 분담 문제는 한국뿐 아니라 미 동맹국 전체의 문제다. 따라서 원칙이 합의된다면 해법 도출이 가능하다. 오히려 비록 일부 의견이지만 북한에 대한 선제 공격론 및 하나의 중국 불인정 등이 대북 정책의 경직성과 맞물릴 가능성이 더 걱정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MD와 방위비 분담,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 중국 견제라는 큰 틀의 방향을 추구하고 있다. 동북아 지역에서 이러한 정책 기조는 도전과 기회를 제공한다. 러시아는 중국이 필요하고, 한국은 미-러 관계 개선이 실제 이루어지면 북방경제를 성장의 한 축으로 삼을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일본은 중국을 견제해야 하고, 러시아는 한중일을 극동 개발에서 경쟁시켜야 한다.
2009년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대(對)러 관계에서 ‘리셋’을 시도했다. 당시는 러시아와 조지아 간 전쟁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황이었다. 대러 제재도 이어지고 있었다. 이때 오바마는 이란 핵을 빌미로 동유럽에 MD를 구축하고자 했다.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자 했다. 리셋 정책 초기인 2010년 4월 양국은 2021년까지의 핵전력 운용에 대한 원칙에 합의하는 일명 ‘START(전략무기감축협정)-3’에 조인했다. 해빙의 조짐이 보였다. 하지만 MD의 벽을 넘지 못했다. 미국은 동유럽 MD 구축을 리셋 정책 지속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보았다. 반면 러시아는 이를 전략적 이익의 침해로 봤다. 양국의 갈등과 세계관의 대결은 크림 반도 합병과 우크라이나 내전 등으로 이어졌다.
2017년 동북아 상황은 당시 유럽 상황과 비슷하다. 단지 미중 갈등 요소가 겹쳐 더욱 복잡할 뿐이다. 이란 핵 위협은 북한 핵 위협으로, 러시아의 반발은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로 치환되어 있을 뿐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우호적 관계 또한 새로운 변수다.
강대국 간 관계는 단순히 지도자의 정책 변화에 좌우되지 않을 구조적 대립과 완충의 요소가 혼재돼 있다. 국내 정치·경제 구조의 경직성 또한 방향 전환을 더디게 한다. 약소국의 이해가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는다는 점도 고정적이다. 약소국들에 강대국의 정책 전환은 항상 도전이다. 도전을 기회로 전환시키려면 비관주의에 빠지지 말고 편의주의에 맞서 창의적인 정책을 도출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설득하는 열의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