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정치교체 뜻 접어” 20일만에 대선 불출마 선언 “인격 살해-가짜뉴스에 상처 받고 편협한 정치 실망” 조기대선 지각변동… 반기문 지지층 움직임 최대 변수로
중도 하차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국회에서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며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지난달 12일 귀국하면서 “정치 교체를 해야 한다”며 대선 출마 의지를 밝힌 지 20일 만이다. 반 전 총장은 이날 오후 3시 반 갑자기 기자회견을 열어 “일부 정치인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태도도 지극히 실망스러웠고 이들과 함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고 사퇴 배경을 밝혔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대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인용될 경우 이르면 4월 말경 조기 대선이 예상되는 가운데 유력 주자의 중도하차로 대선 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당장 보수 진영이 짧은 대선 기간 결집할 수 있느냐가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대세론이 더 탄력을 받을지도 주목된다.
반 전 총장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치 교체와 국가 통합을 이루려 했던 순수한 뜻을 접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불출마를 공식화했다. 반 전 총장이 밝힌 불출마 사유는 두 가지다. 그는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와 각종 가짜 뉴스로 저 개인과 가족, 제가 10년을 봉직한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겼다”고 했다. 또 “일부 정치인들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적 태도로 이들과 함께 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에 이르렀다”고도 했다.
반 전 총장은 불출마 선언 뒤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캠프 관계자들을 만나 “(내가) 너무 순수했던 것 같다. 정치인들은 단 한 사람도 마음을 비우고 솔직히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더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어 “표를 얻으려면 ‘나는 보수다’라고 확실하게 말해야 한다는 요청이 너무 많았다”며 “(나에게) 보수의 소모품이 되라는 얘기지만 보수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대통령의 자격이 없다. 나는 보수지만 그런 얘기는 내 양심상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했다.
문 전 대표는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에 “좋은 경쟁을 기대했는데 안타깝다”고 했다. 민주당은 “반 전 총장은 정치 교체를 주장했지만 민심은 적폐 청산과 정권 교체에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반 전 총장의 중도 사퇴로 야권의 집권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는 주장이다.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는 “(이번 대선은) 국민의당과 민주당의 대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당이 반문(반문재인) 진영을 통합하는 ‘빅텐트론’의 중심에 서겠다는 얘기다. 반 전 총장이 빠진 새로운 대선 지형에서 대세를 지키려는 문 전 대표와 새판을 짜려는 후발 주자들 간 치열한 주도권 다툼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egija@donga.com·송찬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