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섭의 TREND INSIGHT
이번 명절은 집에서 가족들과 보냈는가, 아니면 낯선 여행지로 떠났는가? 요즘 여행업계 최고 성수기는 명절이다. 원래 여름방학이 있고 휴가철인 7~8월이 최성수기지만 해외여행을 위한 공항 출국자 수 최고치를 매년 경신하는 때가 명절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추석과 설, 두 번의 명절이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여행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추석을 좀 더 선호한다. 아무래도 계절적으로도 추운 겨울의 설보다는 날씨 좋은 가을의 추석이 여행 가기도 좋기 때문이다.
명절은 전통적 의미도 있지만 가족과 친척이 오랜만에 모인다는 의미도 크다. 하지만 명절 대신 여행을 선택하는 이가 매년 증가한다는 건 생각해볼 문제다. 왜 사람들이 명절에 해외로 떠나는 걸까? 이유가 몇 가지 있다. 명절은 대개 3~4일의 연휴인데, 토요일, 일요일이 앞뒤로 끼어 있을 때 연차휴가를 1~2일 붙이면 금세 9일짜리 휴가가 만들어진다. 한국 직장인의 평균 연차휴가가 15일이다. 하지만 그중 8일 정도만 쓴다. 절반만 쓰고 나머지는 못 쓰는 거다. 그 8일도 한 번에 몰아서 쓰는 게 어렵다.
그리고 최근 명절에 대한 의미도 많이 퇴색됐다. 명절의 차례나 제사는 전체의 10% 남짓 되는 양반들만의 유교적 제례였다. 그것이 훗날 전 국민의 전통문화처럼 확산된 것이다. 온 가족이 다 같이 모여 기름진 음식 차려서 차례 지내고 먹고 돌아오는 관성적인 행사가 됐다. 오죽하면 ‘조상 덕 본 사람들은 돈 잘 벌어서 명절 때 해외여행 가고, 조상 덕 못 본 이들이 교통체증 시달리며 고향 가서 차례음식 마련하다 부부싸움하며 갈등 겪는다’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겠는가. 특히 2030들은 취업과 진학, 결혼, 출산 등 현실적 고민이 많은 시기지만 명절 때 만난 친척들은 이들에 대한 배려 없는 오지랖으로 충고를 늘어놓기 일쑤다. 그래서 명절을 기피하는 2030이 많기도 하다. 이렇게 명절에 흥미를 잃어가는 이가 늘어나는 것이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트렌드는 사람들의 욕망의 흐름이다. 사람들에게 명절은 전통문화라는 인식보다는 휴가라는 인식이 더 강해진 것이다. 이건 명절에 대한 태도 변화가 좋다 나쁘다로 가늠할 문제가 아니다. 세상이 바뀌면 사람들도 바뀐다. 이미 명절은 그렇게 바뀌고 있다. 명절마다 고향에 의무적으로 가야 한다고 여기는 관성도 점점 약해진다. 명절에 격식과 형식을 버리고 가족끼리 오붓하게 여행을 가는 이도 많아졌다. 명절 기간 가사노동을 피해 호텔에 머무는 호텔 패키지 상품이나 독신자를 위한 여행상품도 점점 진화하고, 명절 증후군이나 명절 직후 이혼 상담 등 명절 자체에 대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이도 늘고 있다.
당신의 명절은 어떠한가? 여전히 전통적인 명절 보내기를 고수하는가, 아니면 다른 것을 얻는가? 이제는 선택의 문제다. 명절은 이미 그렇게 되어버렸다. 명절의 형식과 의미보다 중요한 건 결국 사람이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trendhitchhiking@gmail.com
*TREND Insight & Business Creativity를 연구하는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이며, 저서로는 <라이프트렌드 2016: 그들의 은밀한 취향> <라이프 트렌드 2015: 가면을 쓴 사람들> <라이프 트렌드 2014: 그녀의 작은 사치> <완벽한 싱글> <라이프 트렌드 2013: 좀 놀아본 오빠들의 귀환> <트렌드 히치하이킹>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