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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의 모바일 칼럼]반풍 끝, 중간지대가 꿈틀거린다

입력 | 2017-02-02 15:52:00


반기문이 오늘 집을 나서면서 기자들에게 "정치인이 더 각성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정치 불신, 정치인 불신을 거론하면서 자신이 대권 도전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을 토로했다. 패장도 말을 아껴야 한다. 반기문은 기권한 사람이다. 42.195킬로를 뛰는 마라톤에 비유하자면 10킬로 남짓 뛰었나. 그것도 전력질주도 않고 갈 짓 자 행보를 하다 기권한 사람의 정치 촌평, 하이에나가 아니기 때문에 시체에 이빨을 들이댈 생각은 없어 더는 언급할 가치를 못 느낄 뿐이다.

반의 사퇴는 중간지대의 유동성을 키웠다. 후발 추격하는 주자들에게 그만큼 룸이 커졌음을 뜻한다. 2007년 대선과 올해의 조기대선이 데자뷰처럼 쏙 빼닮았다고 한다. 역시 탄핵심판에 올랐던 노무현의 실정(失政)으로 그해 대선은 일찌감치 야당의 이명박과 박근혜 두 사람 중 예선의 승자가 본선에서도 이겨 대권을 차지하는 구도였다. 여당의 '제3후보'로 기대를 모은 고건 전 총리는 반기문처럼 캠프를 만든지 얼마 되지도 않아 두 손을 들었다. 그때 고건 캠프에 기웃거리던 한 언론인에게 누군가 팁을 줬다. "고건이 집을 팔면 그때 캠프로 들어가라." 정치에 일가견이 있던 꾼들은 고건의 대권 레이스 완주를 반반으로 봤다. 그래서 집을 팔면 올인 하는 징표이니 도와주러 가도 된다는 충고였다.

그러나 2007년 대선과 올해 조기대선은 근본적으로 다른 차이가 있다. 우리 정치사에서 중간지대가 이렇게 왕성하게 세를 형성하고 있던 전례가 없다. 먼저 국민의 당의 안철수가 있다. 이제 '철수는 없다'고 주먹을 불끈 쥔 찰스의 태세가 범상치 않다. 정치 8.5단의 여우같은 박지원이 그를 뒷받침할지, 아니면 또 다른 후보로 문재인이나 안희정을 꺾을 주자를 발굴할지 관심이다. 30년만의 동교동-상도동 연합과 압도적 킹 메이커로 떠오를 김종인과의 연대까지. 그는 막판까지 주판알을 튀기며 계산할 것이다. 장외에서 장내로 진입을 앞둔 손학규도 있다. 결국 한달 쯤 지나면 친문의 민주당은 확장성의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2월 하순, 김종인의 탈당과 몇 의원의 동참은 그 분수령이다.

새누리당은 불임이다. 탄핵에 반대하다 뒤늦게 후보를 물색하며 반기문에 구애하다 잘 되지 않자 '낙상(落傷) 주의' 운운하는 인명진의 막말까지...참 딱하다. 이 틈을 노리는 김문수 이인제가 있기 하지만, 연막을 치고 있는 황교안 권한대행에 눌려 지지도는 1%나 나올까. 황교안은 딜레마를 극복하기 힘들 것이다.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듣보잡 상황'이 실제로 벌어지면 그의 10%를 상회하던 지지율이 며칠 사이에 무책임한 선택이라는 비판 여론과 함께 반타작으로 주춤 기세가 꺾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대선 열기가 달아오를수록 새누리당은 기세(氣勢) 면에서 중간지대로 뛰쳐나간 바른정당에 밀릴 것이다. 혹자는 새누리당이 20석 이하로 쪼그라들 것이라고 호언장담 한다. 광장의 태극기, 박근혜 대통령의 버티기, 헌재의 탄핵가결 결정이후 민심의 추이가 이런 예측의 당부당(當不當)을 결정할 것이다.

반의 사퇴로 오히려 정국은 더 재미있어졌다. 이번 대선은 본질적으로 '킹 메이커의 선거'다. 킹 메이커들이 힘을 합쳐 밀어주는 선수에게 복이 있을지어다. 나는 여전히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한번도 이뤄져 본 일이 없는 중도, 중간지대 주자의 승리를 점치고 있다. 누가 그 주인공인지 아직은 얘기하지 않으련다. 아직도 무대에 커밍아웃하지 않고 있는 선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가 누군지는 다음 기회에...

최영훈 논설위원 tao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