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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도시’ 서울의 새 고민 ‘포켓몬 고’

입력 | 2017-02-03 03:00:00

증강현실 게임 이용자 늘며 ‘스마트폰 좀비’ 길거리 활보
행인과 부딪치는 건 다반사… 횡단보도 한가운데 멈춰서기도




2일 서울시청 앞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한 시민의 스마트폰 화면에 게임 ‘포켓몬 고’ 속 포켓몬이 나타났다. 보도에는 서울시가 부착한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 주의’ 안내 스티커가 색이 바래 있다.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걷는 도시’를 표방하며 보행자 친화 사업에 주력하는 서울시가 때 아닌 복병을 만났다. 모바일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 고’ 탓에 시내를 활보하는 ‘스몸비(스마트폰+좀비)족’이 급증한 것이다. 스몸비족은 길거리에서 스마트폰에만 시선을 집중하며 걷는 시민들을 말한다.

 서울시는 박원순 시장의 역점 사업인 걷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서울역 고가도로를 보수해 보행공원인 ‘서울로’로 바꾸고 보행특구를 지정하는 등 다양한 보행친화사업을 펼쳤다. 하지만 포켓몬 고가 국내에 상륙한 뒤 이용자가 700만 명을 넘으면서 보행안전정책에 비상등이 켜진 것이다.

 2일 점심시간이 되자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는 영하의 날씨에도 많은 직장인이 스마트폰을 들고 돌아다니며 포켓몬을 잡았다. 서울시청 인근 횡단보도 앞 인도에는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을 경고하는 ‘걸을 때는 안전하게’라는 안내판이 부착돼 있었다. 하지만 스몸비족은 개의치 않고 스마트폰에만 신경 쓰며 횡단보도를 건넜다. 어떤 여성은 녹색불이 몇 초 남지 않았는데도 포켓몬을 발견했는지 횡단보도 한가운데 멈춰서는 위험천만한 모습을 보였다.

 포켓몬 고가 ‘걷는 도시’를 위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예고 없이, 어디서나 출몰하는 포켓몬 때문이다. 스몸비족은 길을 걸으며 끊임없이 게임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스몸비끼리 어깨가 부딪치는 것은 다반사다. 심야에 살얼음이 낀 호수 위를 걷는 아이 스몸비까지 나타났다는 아찔한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포켓몬고를 비롯해 유사한 AR 게임 콘텐츠들이 등장해 보행안전을 위협할 것으로 보이지만 서울시는 뾰족한 대책을 아직 내놓지 못했다. 보행자는 운전자에 비해 일일이 행동을 규제하기 어렵다. 시 관계자는 “스몸비족과 교통사고가 나더라도 더 큰 책임을 지는 것은 운전자 쪽”이라며 “시민들 스스로 자제하는 것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시는 지난해 하반기 경찰청과 협의해 강남역, 시청 앞 등 유동인구가 많은 5개 지역에 걸으면서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말라는 경고판을 설치하고 안내 부착물도 인도에 붙였다. 하지만 체감 효과는 높지 않은 편이다. 보도 부착물은 단가가 5만 원가량인 알루미늄 재질의 스티커로 비교적 튼튼한 편이다. 하지만 설치한 지 몇 개월 만에 대부분 훼손돼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일부는 보도블록 교체 공사 등으로 아예 사라지기도 했다.

 서울시는 훼손된 부착물을 제거한 뒤 내구성이 더 강한 재질로 제작해 교체할 예정이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나 비콘(블루투스 기반 위치정보) 등을 활용해 보행자가 사고 위험이 높은 곳에 가면 자동으로 스마트폰 화면에 경고 이미지를 띄우는 애플리케이션(앱)도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방안은 포켓몬 고를 하는 데 방해가 되는 만큼 스몸비족이 설치할 가능성이 낮아 실효성에 의문이 생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 관계자는 “게임 자체를 막을 순 없다. 자치구들과 협력해 다양한 안전대책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홍정수 hong@donga.com·서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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