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고공비행을 이어가고 있다. 초반만 반짝하던 과거와는 달리 열정과 끈기로 위기를 극복하며 단독선두를 질주해 더욱 무섭다. 스포츠동아 DB
‘그릿(GRIT)’이라는 책이 화제다. 그릿의 사전적 의미는 두 가지인데 ‘①티끌, 모래알, 아주 작은 돌 ②(어떤 고난도 견디는) 근성, 용기, 집념, 투지’를 일컫는다. 베스트셀러인 책의 부제는 ‘IQ, 재능, 환경을 뛰어넘는 열정적 끈기의 힘’이다.
대한항공 배구단의 ‘그릿’은 이전까지 1의 이미지(모래알, 티끌)였다. 최고의 세터와 최대의 레프트 자원, A급 외국인선수를 보유하고도 해마다 때가 되면 마치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만유인력 법칙처럼 곤두박질쳤기 때문이다. ‘2016~2017시즌 NH농협 V리그’를 앞두고도 객관적 전력에서 대한항공에 필적할 팀은 안 보였다. 외국인 트라이아웃에서 1순위 픽을 따내는 천운까지 겹쳐 가스파리니까지 가세한 덕분이었다.
실제 대한항공은 개막과 동시에 치고 나갔다. 그러나 배구계의 기류는 반신반의였다. ‘저러다 말겠지’라는 시선은 견고했다. 불길한 예언은 꼭 맞는 것처럼 대한항공은 이후 현대캐피탈, 한국전력 등에 밀려나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례를 뒤엎고, 대한항공은 다시 솟아올랐다. 4라운드 5승1패로 전반기를 1위로 마치더니, 현재까지 단독선두(18승8패 승점53)다.
스포츠동아DB
대한항공 박기원 감독(66)은 1월17일 현대캐피탈전을 승리한 뒤, ‘1%의 모자람’을 얘기했다. “선수들이 알아서 움직인다. 감독이 할일이 없는 팀이다. 이제 딱 1%만 채워지면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2%도 아니고 1%다. 그 화룡점정은 ‘결정적 순간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상심의 공유’일 것이다. 이것은 가르쳐서 습득할 가치가 아니다. 딱 한번만 경험하면 심장 속에 기억될 수 있는 것이다. 대한항공의 우승 갈증은 어쩌면 ‘트라우마’일 수 있다.
대한항공은 1월28일 삼성화재전에서 세트스코어 2-3으로 졌다. 3세트 결정적 오심이 아팠다. 그러나 선수들은 끝까지 싸워 승점 1점을 얻었다. 2월1일 KB손해보험전은 1세트를 뺏긴 뒤, 내리 3세트를 따냈다. 점점 대한항공이 승자의 자격을 얻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대한항공의 ‘그릿’은 2번째의 사전적 의미로 해석해도 될 것 같다. 각자의 재능이 아니라 열정과 끈기로 팀이 응집되어가는 듯 보이기 시작했다. ‘성공은 끝까지 해내는 것’이라고 책은 정의했다. ‘팀 대한항공’에 비로소 그럴 의지가 비치고 있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