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기도장 차량에 끌려가다 숨졌는데… “법적용 대상서 제외” 동승자 없었지만 엄벌 못해… 정부 “해당 체육시설 확대 추진”
합기도장에 다녀오던 일곱 살 여자아이가 통학차량에서 내리다 옷이 문에 끼었다. 운전자는 이 사실을 모른 채 가속페달을 밟았다. 아이는 10m를 끌려가다 숨졌다. 사고를 낸 합기도장 통학차량은 ‘세림이법(개정 도로교통법)’ 적용 대상도 아니었다.
2일 전남 함평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오후 4시 40분경 함평군의 한 주택가 도로에서 합기도장에 다녀오던 A 양(8·초1)이 승합차(12인승)에서 내리다 옷소매가 문에 끼었다. 운전사 신모 씨(70)는 이 사실을 모른 채 출발했고, A 양은 결국 숨을 거뒀다. 신 씨는 경찰에서 “차량 문이 잠겼다는 빨간불이 켜져 운행했다. A 양이 끌려온 것을 몰랐다”고 했다.
조사 결과 이번 사고는 과거 통학차량 사고와 판박이였다. 차량 뒷좌석에는 어린이 6명만 있었고 운전자 외 동승자는 없었다. 경찰은 안전주의 의무 위반 혐의(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로 입건하고 구속영장 신청을 검토 중이다.
세림이법에서 규정하는 어린이(만 13세 미만) 통학 차량은 △유치원 △초등학교 △학원 △체육시설 등에만 해당한다. 현행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는 체육시설 종목을 권투와 레슬링 태권도 유도 검도 우슈로 한정하고 있다. 합기도장을 비롯해 축구교실 농구교실 같은 체육시설 차량은 어린이 통학차량이 아닌 셈이다. 앞으로 이런 체육학원 통학차량에서 사고가 나도 도로교통법 등만 적용할 뿐 세림이법으로 가중 처벌이 불가능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경찰청은 지난해 이런 문제점을 파악하고 전국적으로 체육학원 실태까지 조사했지만 아직 법 개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문체부 관계자는 “1996년 규제 개혁 차원에서 전국대회가 있는 태권도 등 6개 종목만 체육시설로 정하고 합기도 등 나머지 36개 종목은 자유업으로 풀어줬다”며 “앞으로 이 종목들도 세림이법의 적용을 받는 체육시설에 포함시키도록 법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함평=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