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공갈 중국인 블랙컨슈머 주의보
중국인 관광객 리모 씨가 지난해 12월 30일 서울 서초구 A성형외과에서 행패를 부리는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화면(위쪽 사진). 리 씨는 이 병원뿐만 아니라 다른 병원에서도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입간판을 세워놓고 1인 시위를 벌였다. 서울 서초경찰서 제공
지난달 서울 서초구 A성형외과 앞에 어설픈 한글 입간판이 등장했다. 옆에는 선글라스를 낀 한 남성이 서 있었다. 이 성형외과에서 의료사고를 당했다며 1인 시위를 벌이는 중국인 관광객 리모 씨(30)다. 리 씨는 지난해 12월 30일 얼굴 주름을 펴는 필러 시술을 받았다. 그러나 시술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부축하는 간호사들에게 화를 내고 수술실 장비를 마구 부쉈다. 간호사의 어깨를 주먹으로 때리기도 했다. 이 모습은 병원 폐쇄회로(CC)TV에 고스란히 찍혔다.
그는 병원에 수술비 140만 원과 항공료 등 2000만 원을 요구했다. 병원 관계자는 “리 씨는 심지어 간호사에게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으니 나와 잠을 자야 한다’고도 했다”고 말했다. 참다못한 병원 측은 리 씨를 고소했다. 서초경찰서는 공갈과 폭행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리 씨를 구속했다고 2일 밝혔다. 리 씨는 다른 병원 3곳에서도 돈을 요구하며 1인 시위와 공갈을 이어온 ‘상습범’이었다.
한국을 찾는 중국인 의료관광객은 크게 늘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국내에서 진료를 받은 중국인 환자는 2011년 1만9000명에서 2015년 9만9000명으로 늘었다. 2015년 서울 강남구를 찾은 외국인 환자 5만4533명 중 2만2876명(41.9%)이 중국인이다.
의료업계를 노리는 블랙컨슈머(악성 소비자)도 덩달아 늘고 있다. 대부분 성형외과가 타깃이다. 중국 온라인에 게시된 한국 성형관광 후기 중에는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수술비 일부나 전부를 돌려받은 내용도 적지 않다. 경찰 등에 신고해 해결했다는 글도 있다. 문제는 일부 중국인이 이를 악용해 의도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강남의 B성형외과에 한 중국인 여성이 왔다. 이 여성은 “수년 전 받았던 안면윤곽수술이 잘못돼 얼굴이 비대칭이 됐다. 자살해 버리겠다”며 로비에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보름 가까이 1인 시위를 벌였다. 병원이 경찰에 신고를 하자 이 여성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C성형외과도 지난해 7월 “가슴 성형이 잘못돼 양쪽 가슴이 짝짝이가 됐다”며 행패를 부리는 중국인 여성 탓에 곤욕을 치렀다. 이 병원은 경찰 신고 대신 합의금을 건네는 방법을 택했다. 병원 관계자는 “수술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됐지만 문제를 키우고 싶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 바가지 성형관광의 부메랑
중국인 블랙컨슈머의 출현은 한국 성형업계가 자초했다는 시각도 있다. 내국인 비용보다 2, 3배에서 많게는 10배 가까이 바가지를 씌우거나 대리 의사가 집도하는 이른바 ‘유령 수술’이 성행하면서 한국 성형업계의 신뢰를 크게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상하이(上海)에서 온 팡위안 씨(24)는 “한국 성형외과 의사와 중개인들이 한 팀이 돼 중국인 관광객을 속인다고 들었다”며 “블랙컨슈머가 아닌 진짜 피해자라고 생각하지만 만약 그런 사람이 있어도 한국의 잘못이다”고 말했다.
시술 과정에서 피해를 입어 소송이나 형사 사건으로 번지는 일도 끊이지 않고 있다 2015년 6월 불법 임신중절 수술을 받던 중국인 여성을 뇌사에 빠뜨린 혐의로 서울의 한 의원 원장이 구속됐다. 지난해 9월에는 중국인 여성이 지방흡입시술 부작용을 호소하며 성형외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일부 승소하기도 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따르면 2012년부터 4년간 의료분쟁으로 상담한 중국인은 266명에 달한다.
권영대 대한성형외과의사회 홍보이사는 “실제 피해를 본 외국인 관광객은 투명하게 구제해주고 불법 시술업체는 강하게 처벌하는 등 블랙컨슈머와 실제 피해자를 구별할 수 있는 정책적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