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료-술값 내고 받은 칩으로 블랙잭-바카라-룰렛 등 게임 “여기서 도박배워 강원랜드 가야죠”… 한달 동안 100만원 넘게 쓰기도
1월 31일 서울 신촌의 한 술집에서 손님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 이곳에서는 카지노에서 하는 도박인 블랙잭과 바카라 룰렛 홀덤 등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대학원생 우모 씨(29)가 허탈하게 말했다. 우 씨는 최근 용돈은 물론이고 친구한테 빌린 돈까지 100만 원이 넘는 돈을 술값으로 썼다. 그가 찾은 술집은 평범한 곳이 아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나 강원랜드처럼 블랙잭 바카라 룰렛 같은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이른바 ‘카지노 술집’이다. 우 씨는 “칩으로 게임을 하고 번듯한 딜러까지 있어 진짜 카지노 같았다”며 “너무 재미있어 도박에 중독된 건 아닌지 솔직히 걱정이다”라고 푸념했다. 지난해부터 카지노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술집이 서울 강남과 신촌 등 전국적으로 10곳가량 성업 중이다. 현금으로 직접 칩을 사고팔지는 않지만 사행성을 조장하는 건 카지노와 다를 바 없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비싼 양주 살수록 고액 칩 제공
1인당 입장료는 1만 원. 돈을 내면 1000원짜리 칩 10개를 준다. 게임을 즐기는 건 카지노와 똑같다. 테이블에 앉아 딜러의 안내대로 블랙잭이든 바카라든 게임을 하면 된다. 칩 10개로는 10분을 버티기 힘들다. 이때는 추가로 술이나 안주를 주문하면 칩을 받을 수 있다. 양주처럼 비싼 술일수록 칩을 많이 받는다. 각 테이블에는 칩을 많이 얻으려 양주를 주문한 고객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현금으로 칩을 사고파는 건 아니라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음성적으로 거래하는 것까지 막지 않는다. 손님들끼리 몰래 현금으로 칩을 주고받는 경우가 있다. 손님 A 씨는 “실력 있는 친구가 칩을 딴 다음 주변에 몰래 팔기도 한다”며 “칩을 팔아 10만 원을 번 사람도 봤다”고 귀띔했다.
카지노 술집 중에는 딜러들이 아예 현금 베팅을 권하기도 했다. 취재진이 찾은 한 술집에서는 분위기가 무르익자 딜러들이 돌아다니며 현금 2만 원씩을 걸고 하는 ‘인디언 포커’ 게임에 참여하라고 손님들을 모았다. 참가자 6명이 모이면 12만 원을 걸고 하는 이 게임의 승자에게는 양주가 상품으로 주어졌다.
○ 도박 배우는 카지노 술집
신촌의 술집은 대학가인 만큼 20대 젊은이들로 북적거렸다. 한 대학생은 “이곳에서 도박을 배워 강원랜드에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관련 사진이 많이 올라오면서 젊은층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서울 강남의 한 술집 직원에 따르면 “일주일에 300명가량이 찾는데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형태의 술집이 늘어나면 잠재적 도박중독자를 양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윤 경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실제 도박과 거의 유사한 형태로 운영되는 것 같다”며 “처음에는 놀이처럼 할 수 있겠지만 돈거래를 하게 되면 도박중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