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질 결정하는 기온과 습도의 비밀
스키어가 국내 스키장에서 빠른 속도로 스키를 타는 모습. 국내 스키장은 인공설을 다져 만들기 때문에 설질이 매우 단단하다. 단단한 설질에선 빠른 방향전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스키나 스노보드를 속도감있게 즐길 수 있다. 동아일보DB
○ 눈의 질은 ‘공기량’ ‘습도’에 영향
국내 스키장은 인공설에 의지하고 있어 대부분 강설이다. 인공설은 미세한 물 입자를 허공에 뿌려 얼리는 것이라 결정이 성장할 시간이 거의 없어 공기 함량도 낮다. 이런 눈은 설면이 단단해 스키가 잘 튀어 오른다. 방향 전환을 빠르게 할 수 있어 날렵한 감각으로 스키를 탈 수 있다. 만약 적당히 공기를 머금은 자연설이 내려 인공설과 섞이면 스키나 스노보드를 타기에 최상의 환경이 된다. 눈 표면이 적당히 부드러워져 스키 양옆에 붙은 날(에지)이 눈 속으로 더 쉽게 파고들기 때문에 스키 타기가 쉬워진다.
두 번째 조건은 눈 속의 습도다. 습도가 높을수록 질척하고 부드러운 눈, 낮을수록 단단한 눈이 된다. 이 때문에 스키를 타는 당일의 날씨 역시 설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추운 날은 스키장 바닥에 쌓인 눈 속 수분이 얼어붙어 다시 딱딱한 강설로 바뀐다. 반대로 날이 따뜻하면 눈이 녹아 질척질척한 습설로 바뀐다.
기온이 영상과 영하를 오르내리면 스키어들에겐 최악의 환경이 된다. 스키장에 쌓인 눈이 녹았다 다시 얼어붙어 빙판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흔히 ‘설탕밭’이라고 부르는 설질로 바뀌기도 한다. 눈이 아니라 작은 얼음알갱이가 쌓인 것과 다를 바 없어 스키, 스노보드 동호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형태다.
○ 자연설이라고 다 부드럽지는 않아
이런 현상은 해외에서 스키를 타보면 체감할 수 있다. 일본 동부 지역, 우리나라 강원 지역은 공기를 많이 머금은 커다란 눈송이가 자주 내린다. 이런 눈 위에서 스키를 타면 보송보송한 느낌이 든다. 이에 비해 러시아, 중국, 일본 홋카이도 일부 지역 스키장은 매우 추운 기후 때문에 입자가 작은 눈이 내린다. 이런 눈을 다져놓으면 인공설처럼 단단한 설질을 느낄 수 있다.
해외에는 자연설이 그대로 쌓여 있는 스키장이 많다. 산속에 쌓여 있는 눈을 헤치며 스키를 타는 것으로 흔히 ‘파우더를 타러 간다’고 말하는 경우다. 활강 코스를 벗어나 스키를 탄다는 의미로 ‘오프 피스트(Off-piste)’ 스키라고도 부른다.
파우더에서 스키를 탈 때도 설질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일본 중부 지역 눈은 공기와 습기를 많이 머금고 있어 눈이 무겁고, 푹푹 꺼지는 데다 쉽게 스키 바닥에 달라붙는다. 반대로 러시아 지역 자연설은 스키나 스노보드를 타고 회전을 하면 가루처럼 흩날린다. 해외 스키 여행 전문가인 김대승 투어앤스키 사장은 “나라별로 다른 설질 차이를 느껴보는 것도 해외 스키 여행의 큰 재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 추우면 바늘형, 따뜻하면 육각형
물론 인공설은 이 조건에서 예외다. 인공설은 좁은 노즐에서 물을 뿜어내기 때문에 부피가 갑자기 늘어나며 가지고 있던 열을 순식간에 빼앗겨 한순간에 얼어붙는다. 이런 특성 때문에 습도만 낮으면 영상 2∼3도에도 눈을 만들 수 있다. 또 제빙기 원리를 이용한, 얼음을 얼린 다음 곱게 갈아 쏟아내는 제설장비를 이용하면 기온과 관계없이 어느 때나 눈을 만들 수도 있다.
도움말=정욱철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온도센터장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