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망치는 경제]카드수수료 내린지 1년만에 또 “인하” ‘채무대리인제 확대’ 도덕적 해이 우려
카드사들이 가맹점을 늘리려거나 은행들이 대출 영업을 위해 내건 홍보 문구가 아니다. 서민들과 영세 자영업자들의 금융 부담을 줄여주겠다며 일부 국회의원이 내건 법안들의 주요 내용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취약계층을 보호한다는 법안의 취지는 인정하지만 접근방식이 시장 원리와 금융권 현실을 무시해 실행 과정에 논란이 예상된다고 평가했다. 특히 일부 법안은 도덕적 해이만 부추길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 잊을 만하면 나오는 카드 수수료 인하
대표적인 게 카드 수수료 인하 관련 법안들이다. 카드업계는 지난해 1월 연매출 3억 원 이하 영세 가맹점에 대해 카드 수수료율을 0.7%포인트 인하했다. 2012년 개정된 여신전문금융업법(여전법)에서 3년마다 수수료 원가를 산정하고 금융 당국이 영세 가맹점 수수료를 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법에 따라 정해진 다음 조정 시점은 2018년 말이다.
하지만 20대 국회에선 여전법 개정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요양기관에 우대수수료를 적용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영세 상점과 택시에서 1만 원 이하 카드결제는 수수료를 아예 면제하라는 법안, 이원욱 민주당 의원은 우대수수료율 대상 가맹점을 확대하고 우대수수료율도 내리는 법안을 내놨다.
하지만 이들 법안대로 수수료가 인하됐을 때 실익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 연매출 2억 원의 가맹점의 수수료를 0.3%포인트 인하하면 2015년 카드결제 비중(56%)을 고려할 때 줄어드는 수수료는 월 2만7750원에 그친다.
○ 도덕적 해이만 부추길 우려
일부 법안은 도덕적 해이만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채무자가 대리인을 정하면 추심업자가 채무자에게 직접 빚을 독촉할 수 없도록 한 ‘소비자신용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안’. 이 법안은 ‘신용소비자 대리인제도’를 전체 금융권으로 확대 시행하는 게 골자다. 금융권은 대리인을 앞세워 빚을 갚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성실 이자 환급제’가 포함된 은행법 개정안도 반발이 거세다. 은행 대출 원리금을 성실히 갚는다면 이자를 일부 돌려주자는 내용이다. 이에 금융권은 처음부터 지나치게 높은 금리를 물지 않도록 신용평가 모델 개선을 통해 해결해야 할 일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회가 문제가 있으면 사회적 논의에 앞서 법부터 개정하려고 보는 ‘법 만능주의’에 빠져 있다고 비판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던져놓기식’ 발의를 지양하고 법안 발의 전후 충분한 의견 수렴을 통해 경제 원칙에 맞는지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