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김마리아는 1919년 2·8독립선언 주역 중 한 명이다. 하지만 당시 11인의 대표자 명단에 그녀는 물론 다른 여학생의 이름도 없었다. 김마리아는 왜 여자는 남자와 동등하게 독립 거사에 참여할 수 없는지를 수없이 반문하면서, 일본 도쿄(東京) 여자 유학생들을 대표해 2·8독립선언 운동에 깊숙이 참여했다.
거사 후 남성 동지들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자 상대적으로 감시가 약했던 여성의 장점을 이용해 김마리아는 일본 여인으로 변장을 하고, 일본 옷의 커다란 허리띠 속에 독립선언서를 숨기고 비밀리에 귀국했다. 부산에 도착하여 대구, 광주를 거쳐 서울과 황해도 전역을 돌며 2·8독립선언을 전파하고, 독립선언이 조국에서도 일어나야 한다고 설파하였다.
마침내 3·1독립만세운동이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져 나갔고, 4월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기에 이르렀다. 3·1운동과 상하이임시정부 수립을 촉발시킨 2·8독립선언은 학생운동의 최고봉이기도 하지만, 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하게도 적국 심장부에서 일으킨 식민지 독립운동으로 기록된다. 그 담대함에 당시 세계 언론이 주목하였다.
황인자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젠더국정연구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