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 정책사회부 차장·의사
암 환자들은 보험 혜택을 많이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인 부담금은 치료비의 5% 정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일찍 피부암 진단을 받은 장인도 본인이 부담한 치료비는 3만8000원에 불과했다. 최소 10배 이상 비싼 미국에선 있을 수 없는 비용이다.
하지만 말기 암 환자가 돼서 최신 항암제 치료를 받는 경우라면 어떨까. 가령 전신에 전이된 피부암(흑색종)의 경우 그냥 방치하면 곧 죽게 되지만 최근에 나온 면역항암제인 키트루다를 사용하면 1년 생존율이 72%나 된다. 더구나 약이 잘 들으면 평생 복용하면서 살 수도 있다. 구세주와 같은 약이다.
“나만 생각할 수 없잖아요. 내가 치료받겠다고 마지막 상황에서 집까지 팔게 되면 식구들이 길에 나앉게 되니…”(백혈병 환자 이모 씨). 실제 환자의 안타까운 목소리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과도한 의료비 부담에 전세금을 축소하거나 재산을 처분하고 금융기관 대출까지 받는 메디컬 푸어는 2013년 기준으로 70만 가구에 이르렀다. 최근에 발표된 한국임상암학회 자료에 따르면 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암 환자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요인으로는 경제적인 문제가 37.3%, 다음이 정신적, 육체적, 사회적 문제 순이었다. 또 말기 암 환자들의 항암제 치료에 든 비용은 평균 2877만 원인데 이 중 71.6%(2061만 원)가 비급여 항암제 비용으로 지출됐다. 민간 보험에도 가입하지 못한 암 환자에게는 오히려 항암제가 절망과 고통의 약인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신약을 허가해주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경우 신약의 허가 기간은 120일. 다른 나라가 1년 정도 걸리는 것과 비교하면 세계에서 가장 단기간에 신약을 허가해 준다. 이 점에 있어서는 식약처 시스템이 고맙다.
정작 문제는 그 뒤다. 환자가 허가된 신약의 보험 혜택을 받으려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보험약가를 인정받아야 된다. 하지만 보험약가 인정에는 최소한 2년이 넘게 걸린다. 그 사이 환자는 너무나 필요한 그 비싼 신약을 100% 본인 부담으로 사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진한 정책사회부 차장·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