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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민의 핫 피플]무소불위 트럼프에 ‘NO!’ 잽 날린 예이츠, 누구?

입력 | 2017-02-03 10:12:00


무소불위의 광폭 행보를 이어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그에게 한 미국 남부 출신 여성이 소소한 잽을 날렸다. 비록 싸움에선 패했지만 세계적 유명세를 얻었다. 차기 조지아 주지사 후보 물망에도 올랐다. 1월 27일 트럼프가 발동한 '반(反)이민 행정명령'에 맞서다 사흘 만에 경질된 샐리 예이츠 전 법무장관 대행(57) 얘기다.

그는 연방정부 법무 책임자와 법조인의 양심을 걸고 이번 행정명령을 거부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행정명령을 변호하는 일이 정의를 추구하고 옳은 것을 대변하는 법무부 의무와 일치한다는 확신이 없다. 심지어 이 행정명령이 합법적인지조차 알 수 없다."

반면 백악관은 그의 해고 성명서에 "예이츠는 법무부를 배신했다. 그는 오바마 정권이 지명한 사람으로 국경 문제에 약하게 대처했고 불법이민 문제에는 더 약하게 대처했다"고 주장했다. '정의를 추구하고 옳은 것을 대변하겠다'는 말과 '배신, 약하다, 오바마가 임명한 자' 중 어떤 쪽이 품격 있고 지도자다운지는 굳이 논할 필요가 없겠다.

물론 예이츠는 트럼프의 경질이 아니더라도 물러날 사람이었다. 이달 1일 인준을 통과한 제프 세션스 신임 법무장관(71)은 트럼프의 '지적 대부(intellectual godfather)'로 불릴 정도로 대통령의 막강한 신임을 얻고 있었고 청문회도 별 난관 없이 끝났다. 하지만 어차피 비워줄 자리라 해도 이 정도로 공개적이고 당당한 항명을 하며 물러난 사람은 없었기에 전 세계가 그를 주목하고 있다. 예이츠는 과연 누구일까.



<예이츠 경질 사실을 전하는 미 언론 속보>





○ 조지아 토박이

예이츠는 1960년 조지아 주도 겸 최대도시 애틀란타의 유서 깊은 법률가 가문에서 태어났다. 조부는 조지아 항소법원 및 주대법원 법관을 지냈고 아버지도 변호사 겸 조지아 항소법원 판사 출신이다. 조지아대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한 그는 1986년 같은 대학에서 법학 석사를 따고 법조계에 입문했다. 교사 남편 코머 예이츠와 결혼해 두 자녀를 낳았다.

그는 애틀란타 유명 로펌 킹앤스폴딩에서 잠시 근무한 뒤 1989년 조지아 지구의 연방검사보로 법률 공무원의 길을 걷는다.

미 연방검찰(U. S. Attorneys Office)은 미 전역을 93개 지구로 분할해 관리하며, 연방검사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보통 1주에 1개의 연방검찰청이 있지만 캘리포니아, 텍사스처럼 인구가 많고 면적이 큰 주에는 4개의 연방검찰청이 있다. 이들은 주민투표에 의해 선출되는 지방검찰(District Attorney Office)에 비해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수사나 기소에 관해 사실상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방검사가 된 예이츠는 '부패 청소기'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유명 정치인들의 부패 범죄 척결에 앞장섰다. 전 애틀란타 시장 빌 캠벨, 전 조지아 주 교육부장관 린다 시렌코 등이 그가 부패를 밝혀내 처벌한 인물이다.

트럼프가 발동한 ‘반(反)이민 행정명령’에 맞서다 사흘 만에 경질된 샐리 예이츠 전 법무장관 대행. 위키미디어



○ 애틀란타 올림픽 폭파범 맡아 유명세

조지아 주에서는 유명했지만 전국적 인지도는 낮았던 그가 스타 법조인이 된 계기는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이다. 올림픽이 한창이던 1996년 7월 27일 애틀랜타 시내 센테니얼 올림픽 공원에서 정체 불명의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이후 애틀란타의 한 게이 바 등에서 4차례 추가 연쇄 테러가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2명이 숨지고 100여 명이 다쳤다.

범인은 낙태와 동성애에 반대하는 살인마 에릭 루돌프(51). 그는 신출귀몰하게 도망을 다녔고 2년 후 한 낙태시술 병원을 또 폭파해 경찰관 1명을 숨지게 했다. 루돌프는 첫 테러가 터진 지 약 7년이 흐른 2003년 5월에야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붙잡혔다.

예이츠는 루돌프 사건의 수석 검사로 활동하며 그가 총 4건의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는데 큰 역할을 했다. 미국 전역으로 생중계된 당시 재판에서 "낙태병원 폭탄 투하는 내 신념이었다. 이를 후회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루돌프의 죄를 조목조목 몰아붙이던 그의 모습은 미국인에게 깊이 각인됐다.

○ 제프 세션스와의 악연(?)

승승장구한 그는 2014년 말 오바마 미 대통령으로부터 법무차관으로 지명된다. 당시 오바마는 예이츠의 상관인 법무장관에도 최초의 흑인 여성 로레타 린치를 발탁했다. 2015년 4월 린치, 한 달 후 예이츠가 청문회를 통과함에 따라 미국 법무부는 사상 최초로 '여성 장관-여성 차관' 체제를 맞이했다. 정치인이 아닌 검찰 출신 여성 2명이 미국 법무부를 이끈 것도 처음이었다.

공교롭게도 당시 청문회 과정에서 그에게 날선 질문을 던진 사람이 바로 제프 세션스 현 법무장관. 예이츠와 같은 애틀란타 출신으로 조지아 주 공화당 상원의원이던 세션스는 그에게 "대통령이 위법적 일을 지시하면 법무장관이나 차관이 '노'라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예이츠의 대답은 "법무장관과 차관은 법과 헌법을 준수하고 그 어디에도 예속되지 않는 독립적 법적 자문을 대통령에게 할 의무가 있다"였다.

예이츠는 2년 뒤 자신이 한 말을 철저히 지켰다. 상당수 미 언론이 "예이츠가 자신의 청문회 때 다짐했던 말을 그대로 실천했을 뿐"이라고 호평하는 이유다.



<예이츠에게 질문하는 세션스 동영상>




일각에서는 어차피 곧 물러날 예이츠가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명령에 굳이 반대하면서 법무부를 정치화했다고 비판한다. 보수성향 여론조사회사 라스무센의 조사에서는 미국인 57%가 "이번 행정명령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트럼프의 행동과 어휘가 경박하고, 그의정책이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의 정책에 찬성하는 미국인이 무척 많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 다음 행보는 주지사 도전?

미국 사회에 엄청난 논쟁거리를 던지고 퇴장한 예이츠. 그는 언론의 빗발치는 인터뷰 요청도 거절한 채 정중동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애틀란타 지역 언론들은 민주당 수뇌부가 반(反)트럼프 진영의 스타로 떠오른 그를 차기 조지아 주지사 후보로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한다.

현직 주지사는 공화당 출신의 네이선 딜. 주 의회도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딜 주지사는 "물이 에볼라 바이러스를 죽이는 효과가 있다" 등과 같은 잦은 실언으로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조지아 토박이로 법조인 집안의 후광 효과가 있는 예이츠가 이번 행정명령 반대로 세계적 인지도까지 얻은 만큼 2018년 중간선거에서 그를 내세우면 충분히 주지사 직을 탈환할 수 있다는 것이 민주당의 속내다.

과연 예이츠가 주지사 선거에 나서 법률가가 아닌 행정가-정치인의 인생을 시작할까. 앞으로 그의 행보는 더 넓어질 것 같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