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연방정부 법무 책임자와 법조인의 양심을 걸고 이번 행정명령을 거부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행정명령을 변호하는 일이 정의를 추구하고 옳은 것을 대변하는 법무부 의무와 일치한다는 확신이 없다. 심지어 이 행정명령이 합법적인지조차 알 수 없다."
물론 예이츠는 트럼프의 경질이 아니더라도 물러날 사람이었다. 이달 1일 인준을 통과한 제프 세션스 신임 법무장관(71)은 트럼프의 '지적 대부(intellectual godfather)'로 불릴 정도로 대통령의 막강한 신임을 얻고 있었고 청문회도 별 난관 없이 끝났다. 하지만 어차피 비워줄 자리라 해도 이 정도로 공개적이고 당당한 항명을 하며 물러난 사람은 없었기에 전 세계가 그를 주목하고 있다. 예이츠는 과연 누구일까.
<예이츠 경질 사실을 전하는 미 언론 속보>
○ 조지아 토박이
예이츠는 1960년 조지아 주도 겸 최대도시 애틀란타의 유서 깊은 법률가 가문에서 태어났다. 조부는 조지아 항소법원 및 주대법원 법관을 지냈고 아버지도 변호사 겸 조지아 항소법원 판사 출신이다. 조지아대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한 그는 1986년 같은 대학에서 법학 석사를 따고 법조계에 입문했다. 교사 남편 코머 예이츠와 결혼해 두 자녀를 낳았다.
그는 애틀란타 유명 로펌 킹앤스폴딩에서 잠시 근무한 뒤 1989년 조지아 지구의 연방검사보로 법률 공무원의 길을 걷는다.
미 연방검찰(U. S. Attorneys Office)은 미 전역을 93개 지구로 분할해 관리하며, 연방검사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보통 1주에 1개의 연방검찰청이 있지만 캘리포니아, 텍사스처럼 인구가 많고 면적이 큰 주에는 4개의 연방검찰청이 있다. 이들은 주민투표에 의해 선출되는 지방검찰(District Attorney Office)에 비해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수사나 기소에 관해 사실상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럼프가 발동한 ‘반(反)이민 행정명령’에 맞서다 사흘 만에 경질된 샐리 예이츠 전 법무장관 대행. 위키미디어
○ 애틀란타 올림픽 폭파범 맡아 유명세
조지아 주에서는 유명했지만 전국적 인지도는 낮았던 그가 스타 법조인이 된 계기는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이다. 올림픽이 한창이던 1996년 7월 27일 애틀랜타 시내 센테니얼 올림픽 공원에서 정체 불명의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이후 애틀란타의 한 게이 바 등에서 4차례 추가 연쇄 테러가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2명이 숨지고 100여 명이 다쳤다.
범인은 낙태와 동성애에 반대하는 살인마 에릭 루돌프(51). 그는 신출귀몰하게 도망을 다녔고 2년 후 한 낙태시술 병원을 또 폭파해 경찰관 1명을 숨지게 했다. 루돌프는 첫 테러가 터진 지 약 7년이 흐른 2003년 5월에야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붙잡혔다.
예이츠는 루돌프 사건의 수석 검사로 활동하며 그가 총 4건의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는데 큰 역할을 했다. 미국 전역으로 생중계된 당시 재판에서 "낙태병원 폭탄 투하는 내 신념이었다. 이를 후회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루돌프의 죄를 조목조목 몰아붙이던 그의 모습은 미국인에게 깊이 각인됐다.
○ 제프 세션스와의 악연(?)
승승장구한 그는 2014년 말 오바마 미 대통령으로부터 법무차관으로 지명된다. 당시 오바마는 예이츠의 상관인 법무장관에도 최초의 흑인 여성 로레타 린치를 발탁했다. 2015년 4월 린치, 한 달 후 예이츠가 청문회를 통과함에 따라 미국 법무부는 사상 최초로 '여성 장관-여성 차관' 체제를 맞이했다. 정치인이 아닌 검찰 출신 여성 2명이 미국 법무부를 이끈 것도 처음이었다.
공교롭게도 당시 청문회 과정에서 그에게 날선 질문을 던진 사람이 바로 제프 세션스 현 법무장관. 예이츠와 같은 애틀란타 출신으로 조지아 주 공화당 상원의원이던 세션스는 그에게 "대통령이 위법적 일을 지시하면 법무장관이나 차관이 '노'라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예이츠의 대답은 "법무장관과 차관은 법과 헌법을 준수하고 그 어디에도 예속되지 않는 독립적 법적 자문을 대통령에게 할 의무가 있다"였다.
예이츠는 2년 뒤 자신이 한 말을 철저히 지켰다. 상당수 미 언론이 "예이츠가 자신의 청문회 때 다짐했던 말을 그대로 실천했을 뿐"이라고 호평하는 이유다.
<예이츠에게 질문하는 세션스 동영상>
일각에서는 어차피 곧 물러날 예이츠가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명령에 굳이 반대하면서 법무부를 정치화했다고 비판한다. 보수성향 여론조사회사 라스무센의 조사에서는 미국인 57%가 "이번 행정명령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트럼프의 행동과 어휘가 경박하고, 그의정책이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의 정책에 찬성하는 미국인이 무척 많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 다음 행보는 주지사 도전?
미국 사회에 엄청난 논쟁거리를 던지고 퇴장한 예이츠. 그는 언론의 빗발치는 인터뷰 요청도 거절한 채 정중동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애틀란타 지역 언론들은 민주당 수뇌부가 반(反)트럼프 진영의 스타로 떠오른 그를 차기 조지아 주지사 후보로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한다.
현직 주지사는 공화당 출신의 네이선 딜. 주 의회도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딜 주지사는 "물이 에볼라 바이러스를 죽이는 효과가 있다" 등과 같은 잦은 실언으로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조지아 토박이로 법조인 집안의 후광 효과가 있는 예이츠가 이번 행정명령 반대로 세계적 인지도까지 얻은 만큼 2018년 중간선거에서 그를 내세우면 충분히 주지사 직을 탈환할 수 있다는 것이 민주당의 속내다.
과연 예이츠가 주지사 선거에 나서 법률가가 아닌 행정가-정치인의 인생을 시작할까. 앞으로 그의 행보는 더 넓어질 것 같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