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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큐레이션] 2017 반기문 잔혹사

입력 | 2017-02-03 20:53:00


“폭망이다.” 1일 오전 일명 ‘반기문 테마주’에 목돈을 건 주식투자자들은 눈물 흘렸습니다. 이날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대선불출마를 선언했죠. 2일 △지엔코 △성문전자 △씨씨에스 등 관련 테마주는 급락을 면치 못했습니다. 거래제한폭까지 떨어진 종목도 많았죠. 사실 반 전 총장 관련주는 1년 간 등락을 거듭했습니다. 반 전 총장의 정치적 우여곡절이 반영된 것이죠. 외교영웅과 유력한 대권주자, 대선열차 하차로 이어지는 굴곡진 1년이었습니다.




 ❙ 빨랐던 대망론, 늦었던 출마선언



반 전 총장이 대선출마를 시사한 건 지난해 5월25일 한국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관훈클럽 포럼에 참석한 반 전 총장은 당시 미국 대선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71)과 버니 샌더스(77)를 사례로 들며 “체력에 자신있다”고 말했죠.

한국에 필요한 '지도자상'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반 전 총장은 "한국 사회의 문제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누군가 대통합을 선언하고 솔선수범하면서 국가통합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고 답했죠.

이밖에도 반 전 총장은 직접적인 출마 의사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대권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는 말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5일 오후 제주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2016.5.25 제주공항 사진공동취재단



이후 국내 여론은 '반기문 대망론'을 더이상 거스릴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그해 6월 한국갤럽의 차기 정치지도자 선호도에서 반 전 총장이 1위를 차지했죠. 해당 조사에서 후보군별 선호도는 각각 반 전 총장(26%),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16%),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10%), 박원순 서울시장(6%)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정치권에선 여권은 반 전 총장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야당은 이를 견제하는 정치적인 양분 구도가 만들졌죠.

분위기가 이런데도 반 전 총장은 결단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언론과 정치권의 계속된 물음에도 반 전 총장은 대권출마 여부를 밝히지 않았죠.



지난해 12월 21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한국특파원단을 만난 반 전 총장은 드디어 '사실상의 대권출마 선언'을 합니다. 2014년 11월 '반기문 대망론'이 불거진 뒤 2년여 만이었죠. 공교롭게도 이날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와 촛불 시위 등의 영향으로 새누리당이 분당한 날이었죠.


❙ 잔혹한 반기문의 1월



지난달 25일 대권 행보를 이어가던 반 전 총장은 국회의원들과의 비공개 조찬 간담회에서 한숨을 내쉬며 한 말입니다. 귀국 직후 정치교체와 국민통합 행보로 '반기문 바람'이 불 것을 예상했지만, 그 기대가 무너졌다는 의미였죠.

지난달 12일 금의환향한 반 전 총장은 곧바로 민생 투어에 들어갔습니다. 소통의 리더십을 보이며 대선 레이스에서 주도권을 잡으려 한 것이죠. 하지만 언론과 디지털 비평을 통해 혹독한 검증과정을 거치면서 반 전 총장의 지지율은 연일 곤두박질쳤습니다.

특히 유엔 사무총장 재임 시절 한일 위안부 협상 결과에 "올바른 용단을 내린 데 대해 역사가 높게 평가할 것"이라고 한 발언이 재조명돼 언론의 집중 취재를 받았죠. 이 과정에서 반 전 총장은 특정매체 기자들을 지칭해 "나쁜 놈들"이라 발언해 논란이 됐습니다. 또한 "보수인가 진보인가" "입당하나 안 하나" 등의 정치적인 결정에 모호한 태도를 보이면서 반 전 총장은 줄곧 ‘반반(半半)’이란 꼬리표를 떼어내지 못했죠.

'만 원권 지폐 두 장 동시투입' '턱받이 논란' '마스크 쓰지 않은 방역' '사람 사는 '사회'(노무현 전 대통령이 즐겨 쓰던 문구인 '사람 사는 세상'을 잘못 표기) 등의 논란도 온라인에서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반 전 총장측은 "악의적인 편집이다"라고 맞섰지만 끝내 지지율 하락을 막진 못했죠.

1월 23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반 전 총장의 대선 주자 지지율은19.8%(전주 대비 2.4% 포인트 하락)로 29.1%로 나타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보다 10% 포인트 뒤졌습니다. 지난해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였던 반 전 총장을 바라보는 민심이 급변한 것입니다.


반 전 총장의 행보. 동아일보DB



결국 반 전 총장은 귀국 20일 만(2월1일)에 대선행 열차에서 하차합니다. 반 전 총장은 대선불출마 이유를 "가짜 뉴스에 상처 받고 편협한 정치에 실망했다"라고 설명했죠.




반 전 총장측이 꼽은 대표적인 가짜 뉴스는 '퇴주잔 논란'이었습니다. 지난달 14일 충북 음성 부친 묘소 성묘 중 퇴주잔을 받아 마시는 것처럼 짜깁기한 동영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졌습니다. 지난달 18일에는 조선대 강연에서 "광주는 훌륭하신 충렬공이 탄생한 곳"이라는 반 전 총장의 발언을 일부 언론이 '충무공'으로 잘못 알아듣고 오보를 내는 해프닝도 벌어졌습니다. 이와같은 가짜 뉴스의 부정적인 영향으로 '반기문 기대감'이 급락했다는 것이 반 전 총장측의 주장입니다.

일각에선 반 전 총장이 귀국 이후 '보여주기식 행보'에 매몰돼 민심을 잃은 것이 문제였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또한 정치권의 냉대 속에 개헌 세력을 결집해 반문(반문재인) 진영에 '빅텐트'를 치려했던 초기 구상이 무너진 것과 "(이대로라면)보수의 소모품이 될 것 같다"는 회의감이 반 전 총장이 대선행 하차를 마음먹은 진짜 이유라는 의견도 나오죠.

❙ 반기문이 남긴 말

중도 하차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국회에서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며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동아일보 DB



반 전 총장의 '중도하차 발표'는 최측근 참모들조차 예상하지 못한 '깜짝 발표'였습니다. 대선불출마 발표가 있던 당일 오전까지만해도 참모진은 '바른정당 입당'과 '독자세력 구축'이라는 두 가지 방안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고 하죠. 반 전 총장은 이날 새벽, 부인인 유순택 여사와 심각하게 논의한 뒤 발표문을 직접 썼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잔혹한 1월을 보내며 반 전 총장이 큰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외교영웅'에서 '기름장어'와 '반반' 등 회화화된 반기문으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었습니다.

하차 발표 다음 날, 캠프 관계자들과 해단식을 겸한 오찬 자리에서 반 전 총장은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남깁니다. 이 말 속엔 외교관 출신으로 처음 대권에 도전했다가 실패를 맛 본 아쉬움과 쓰라림이 담겨있습니다.




"국가통합할 지도자 나와야"
(동아일보 2016.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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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