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호 전문기자의 人]우측 깜빡이 켠 ‘재벌 저격수’ 김상조
대표적인 재벌 개혁론자인 김상조 교수는 촛불 민심으로 나타난 공정사회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이어가려면 기득권 세력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진보 논리에 대한 반성과 혁신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난달 23일 서울 성북구 삼선교로 한성대학교 연구실에서 인터뷰 중인 김상조 교수.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윤영호 전문기자
지난달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표자로 참여한 그에 대해 한 평가다. 그 스스로도 자신이 변했다는 점을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한걸음 더 나아가 자신이 속한 진보 진영이나 야권에 대한 쓴소리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그에 대한 논란도 많다. 보수진영에서 여전히 색안경을 끼고 그를 보는 것은 그렇다 쳐도 진보진영 일각에서도 비난의 시선을 보낸다. 삼성그룹도 원하는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을 그가 주장한다고 해서 심지어 ‘삼성을 위해 총대를 멨다’는 비판까지 받는다.
눈 밝은 독자라면 짐작했겠지만 주인공은 ‘재벌 저격수’로 잘 알려진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55·한성대 교수)이다. 김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와 함께 소액주주운동을 이끌면서 재벌의 편법·불법 상속과 전근대적 지배구조 등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해 왔다. 2001년부터 장하성 교수에 이어 경제개혁연대를 이끌고 있다.
김 교수는 지난해 12월 6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 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이른바 ‘사이다’ 발언으로 청문회 스타로 떠오르기도 했다. 김 교수는 이날 “삼성그룹 의사 결정은 이사회가 아닌 미래전략실에서 이뤄지고 있다” “미래전략실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지만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등의 말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를 문제 삼았다. 아울러 “재벌은 이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새로운 발전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보진영 향해 쓴소리도
“‘증세 없는 복지’도 국민을 속이는 것이지만 ‘대기업·부자 증세’만으로 복지 확대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야당의 주장 역시 말이 안 된다. 소득세 법인세를 합리적으로 개편한 후에 궁극적으로는 부가가치세율을 올려야 가능한 얘기다. 야당이 표 달아난다고 부가가치세 거론을 금기시하는 것은 비겁한 태도다.”
“노조 조직률이 10%도 안 되는 상황에서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 해결 없이 근로자 경영 참여를 얘기하는 것은 조직화된 기득권 노조만 보호하는 것에 불과하다.”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겸업 금지)는 중요한 원칙이지만 이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현행 규제가 한 글자도 고칠 수 없는 금과옥조는 아니다. 변화된 환경에 맞춰 이 원칙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적용할지 고민해야 한다. 재벌 그룹에 속한 금융회사 전체를 하나로 통합해서 건전성 감독을 하는 그룹 통합 감독체계를 도입하면서 중간금융지주회사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그런 차원이다. 물론 중간금융지주회사는 삼성을 위한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는 걸 알지만 속된 말로 삼성 돈 먹고 하는 얘기가 아니어서 두렵지 않다.”
모두 진보진영이나 야당을 불편하게 하는 그의 주장이다. 또 그가 2013년 7월 삼성그룹 사장단 회의에 초청받아 강의를 한 이후 삼성과 대화를 시작한 것을 두고도 뒷말이 나왔다. ‘삼성 저격수’인 그가 삼성에 백기 투항한 것 아니냐는 오해였다.
그의 우(右) 선회 배경은 외부 환경 변화로 수렁에 빠진 한국 경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 성장률이 둔화한 데다 대중 수출 호조에 따른 중국 효과도 없어진 탓이다. 이런 상황에 개혁이라는 명분하에 강한 주장을 계속하기 힘들어졌다는 것.
최근 대선 주자들이 앞다퉈 재벌 개혁을 부르짖는 것도 김 교수로서는 썩 달갑지만은 않다. 그의 목소리에는 특히 야당을 깨우는 죽비 소리와 같은 내용이 많다.
“지금 촛불 민심을 등에 업고 국회에 상정된 재벌 개혁 법안이 100개가 넘는데 이를 어떻게 다 통과시킬 것인가. 그중에서 실현 가능하고 충분히 성숙된 법안을 선별해내고 이걸 집행할 수 있는 수준으로 다듬어 협의를 통해 통과시키는 모습을 보일 때만이 야당은 국민의 신뢰를 얻을 것이다. 선명성 경쟁은 더는 안 된다.”
그의 재벌 개혁 방안은 간단하다. 우선 현재의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공정거래법)을 강화하는 게 능사가 아니고 기존 법이라도 공정하고 일관되게 집행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상법 및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시장 기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
그는 공정한 시장 질서를 만드는 것도 결국은 경제 주체들이 적극적으로 자기 권리를 행사할 때 가능하다고 믿는다. 예컨대 국민연금 같은 기관투자가나 소액주주가 자기 권리를 지키는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자기 권리를 확대함으로써 재벌 총수의 전횡이 점점 어려워지고 자연스럽게 재벌 개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누가 집권하든 차기 정부에서 재벌 개혁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는 일자리 창출과 복지 확대 재원 마련을 위한 조세체계 개편이다. 그나마 재벌 개혁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의가 많았지만 두 과제에 대해서는 논의 방향조차 결정되지 않은 상태여서 더 어려울 수 있다.”
‘사회주의자’? ‘월가의 앞잡이’?
김 교수는 시민운동을 시작할 때부터 논란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가 외환위기 이후 당시로서는 낯선 소액주주운동을 들고 나왔을 때 보수진영은 ‘사회주의자’라고 비난했고, 진보진영은 진보진영대로 ‘월가의 앞잡이’라고 수군댔다. ‘뜨거운 아이스크림’처럼 양립 불가능한 평가를 동시에 받은 것이다.
이런 논란은 오히려 김 교수를 단련시켰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그동안 결정적인 실수를 하지 않은 원동력이 됐다. 그동안 대기업의 행태를 문제 삼으면서 거론한 구체적인 사실 관계가 잘못돼 어려움에 처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그는 본업인 대학교수로서의 의무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자부한다. 소액주주운동에 뛰어든 이후 단 한번도 휴강을 하지 않았다.
그는 또 처음부터 정부나 기업이 발주하는 연구 프로젝트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기업을 비판하는 처지에서 기업 연구비를 받았다가는 이해상충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2013년 삼성에서 강의 요청이 왔을 때 ‘내가 받는 강의료의 최고 수준인 50만 원만 받겠다’는 조건으로 수락했다. 삼성이 외부 강사에게 주는 강의료가 500만 원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삼성은 강의가 끝난 후 강의료 영수증을 300만 원짜리로 준비해 놓았더라. 다시 수정해 오라고 해서 50만 원만 수령했다. 만 32세 전에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대학교수가 돼 현재 기준으로는 상위 3% 이내에 드는 연봉 1억 원 이상을 받는데 뭘 더 바라겠는가.”
그는 자신이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대학교수로서 가르치고 연구하는 내용이나 한 시민으로서 활동하는 시민단체에서도 똑같이 기업 지배구조에 관한 일을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일과 취미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행복한 삶을 누리는 셈이다. 여기에 자신을 지지해 주는 부인과 아들은 든든한 우군이다. 다만 가족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게 늘 미안하다고 한다.
“지금 상황에서 나 같은 얘기를 하는 사람이 좀 더 많아져야 한다. 내가 100% 맞아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균형된 사고를 위해서다. 다양한 얘기를 꺼내놓고, 생산적인 토론을 해야 우리 사회도 발전할 수 있다.”
▼내 인생의 스승은▼
조순-정운찬 학맥의 우등생… 시민운동으로 이끈 장하성
김상조 교수가 첫손에 꼽는 스승인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왼쪽)와 정운찬 서울대 명예교수.
“조순 정운찬 교수는 늘 ‘현실 참여는 지식인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현실 참여란 게 꼭 정치를 하라는 뜻이 아니라 경제학도로서 연구실에만 앉아 있지 말고 현실 문제에 대한 충분한 연구를 바탕으로 사회적 발언도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또한 사회과학도로서 갖춰야 할 철학적 기초 및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했을 뿐 아니라 두 분 모두 학문적 기반도 넓고 깊었다. 특히 정운찬 교수는 학자이기 이전에 따뜻한 아버지와 같은 분이었다.”
정운찬 전 총리는 김 교수에 대해 “성실하면서도 부지런해 경제이론뿐 아니라 국내외의 경제 현실에도 정통한 학자”라고 평했다. 정 전 총리의 기억이다.
“학창 시절 김상조에게 미국 유학을 권했더니 ‘요즘은 인터넷으로도 외국의 유명 대학 교수 강의를 들을 수 있어 굳이 갈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인터넷 강의만으로는 배울 수 없는 게 많다고 다시 강권했으나 ‘한국에서 열심히 하겠다’고 버텼다. 그런데 정말 국내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하면서 유학생 이상으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
‘차가운 머리, 뜨거운 가슴’의 김기원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2014년 별세한 김기원 전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등은 인생의 선배이면서도 스승처럼 이끌어 줬다. 김 교수는 “장 교수나 김기원 전 교수는 72학번 동갑내기이면서도 각기 다른 특성이 있었지만 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마다 기댈 수 있는 분이었다”고 말했다. 전성인 교수는 조순-정운찬 학맥의 선배다.
장하성 교수는 학연 지연 등으로 아무런 인연이 없는 김 교수를 시민운동으로 이끈 스승이다. 김 교수가 노사정위원회 공익책임전문위원으로 일하던 1999년 4월 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회원국에 제정하라고 권유한 기업지배구조 모범 규준 때문에 인연을 맺었다.
“기업지배구조의 중요성을 잘 모르던 당시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을 먼저 찾아가 ‘이게 1년간의 임단협보다 더 많은 영향을 근로자들의 미래에 미칠 수 있으니 관심을 가져달라고 했으나 반응이 없었다. 참여연대 활동을 시작한 장하성 교수를 찾아갔더니 대뜸 ‘그 문제를 들고 온 사람이 직접 해보라’고 권유해 참여연대에 합류했다.”
김 교수는 김기원 전 교수를 특히 아쉬워한다. 김 교수는 “김 전 교수는 영국의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의 금언대로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을 동시에 지닌 대표적인 경제학자였다”면서 “그야말로 선험적 도그마나 이념적 목표에 흔들리지 않고 객관적 현상을 정확히 분석하고 그 결과를 우리 사회의 약자를 위해 나눠 주려고 했다”고 평했다. 진보 진영의 금기에 도전하는 자세도 그에게 배웠다고 한다.
윤영호 전문기자 yyoung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