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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잔향]책을 향한 길 위의 지도

입력 | 2017-02-04 03:00:00


ⓒ오연경

 10여 년 전 서울의 몇몇 큰 서점에는 신문의 책 소개 지면을 훑어볼 수 있도록 모아놓은 작은 진열대가 있었습니다. ‘책의 향기’를 읽다가 눈에 들어온 책 제목을 메모해 서가를 뒤져 실물을 찾아들고 읽던 뿌듯한 기억이 또렷합니다. 그때의 책은 대개 표지 꾸밈이 소박했고 묶인 종이에는 그림이나 사진 없이 활자만 빼곡했습니다. 표면 거친 종이에는 맑은 잉크 향이 배어 있었습니다.

 설 연휴를 기회 삼아 책의 향기 지면의 구성, 디자인, 내용을 개편했습니다. 이제는 10년 전과 달리 서점에서 신문 책면 진열대를 만나기 어려운 세상이 됐습니다. 개편의 목표는 딱 하나였습니다.

 ‘읽는 이의 시선을 어떻게든 잠시라도 붙잡아 보자.’

 그 잠깐의 시선으로 인해 실물의 책을 찾으러 걸음 옮길 마음을 조금이나마 싹틔울 수 있다면, 어떤 노력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면 상단에 새로 마련한 ‘책꽂이 첫 칸’을 통해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곁에 가까이 두고 즐겨 읽는 책을 한 권씩 추천받아 소개합니다. 고전이든 신간이든 ‘바로 지금 이 시기에 이 땅 위의 사람들과 두루 함께 읽고 싶은 책’에 대한 답을 청할 것입니다.

 둘째 면 상단의 ‘밑줄 긋기’에는 문학 신간 가운데 책의 향기 팀 기자들이 인상 깊게 읽은 한 줄을 옮겨 적겠습니다. 그 한 줄을 품은 책에 대한 궁금함을 끌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귀한 문장을 찾겠습니다.

 한 주의 책의 향기 제작 후기인 ‘잔향’에 작은 그림을 입혀줄 일러스트레이터 오연경 씨, 지면 간판과 꼭지별 표제 이미지를 공들여 만들어준 익명의 디자이너 K 씨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잔향이라는 제목에 한자를 병기할지 아니면 한글로만 할지 꽤 오랫동안 고민했습니다. 잔향(殘響)으로 읽혀도 좋겠다 싶어 한글만 쓰기로 했습니다. 음악은 잔향(殘響)의 존재 덕에 완성되고 커피는 잔향(殘香)으로 인해 온전해진다 믿습니다.

 연주자가 마지막 마디 손짓과 호흡을 거둔 뒤 무대에 맴도는 잔향 한 조각이라도 행여 놓칠세라 환호를 잠시 눌러 참게 만드는 음악. 모락모락 오르던 김이 가신 뒤 차갑게 식은 나머지를 무심코 입에 가져갔을 때 새삼 놀라 한동안 가만히 잔향을 머금어 새기도록 하는 커피.

 어쩌다 드물게 만나는 그런 고마운 순간과 닮은 책을 찾아 담아낼 수 있도록 애쓰겠습니다. 실물의 책을 향한 길 위에서 믿고 읽을 수 있는 지도로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손택균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