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5일로 100일째를 맞았다. 지난해 10월 29일부터 올 2월 4일까지 14차례 진행된 촛불집회는 우리 사회가 변혁기에 들어섰음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이전까지 반복된 불법 폭력시위는 촛불집회 내내 거의 자취를 감췄다. 반면 세대 간 갈등을 비롯해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분열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통합'이라는 과제를 안겼다.
● 촛불과 태극기
4일 열린 14차 주말 촛불집회는 설 연휴 때 한 주를 쉬고서 열린 것이다. 전날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압수수색영장 집행을 청와대가 불승인해 영장 집행이 불발되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특검의 압수수색 협조 요청을 사실상 거부한 직후라 이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날 집회에는 최순실 씨(61)가 특검에 출석할 당시 "염병하네"라고 일갈한 미화원 임모 씨(65·여)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 유례없는 평화집회
촛불집회 100일은 유례없는 평화집회로 '한국 민주주의의 저력을 보여줬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김현주 씨(50·여)는 "추운 날씨도 새로운 정치를 향한 국민의 열망을 꺾지는 못했다"며 "앞으로는 더욱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했다. 유한설 씨(39)도 "정치인들에게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지 보여주겠다"며 "앞으로 모든 투표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동안 정치에 소극적이었던 젊은 층은 자신만의 해학과 철학으로 유쾌하게 참여하면서 집회를 축제로 만들었다. 집회에는 '첫눈이 하야네' '한국 고산지 발기부전 연구회 - 하야하그라' 등의 구호가 등장하기도 했다. 최순실 씨를 따라해 흰색 셔츠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머리에 얹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사람, 말(馬)머리 가면을 뒤집어쓰고 몸에 '유라꺼'라는 종이를 붙인 참가자도 있었다. 높아진 시민의식도 드러냈다. 평소 집회가 끝나고 지저분한 도로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윤성 씨(34)는 "어느 때보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100일 이었다"고 자평했다.
전문가들도 평화집회에 높은 점수를 줬다. 이진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석좌교수는 "광장이 스스로 자제력을 발휘해 평화를 택한 점이 과거 집회 문화와 달라진 점"이라고 분석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도 "문화와 정치적 저항을 결합시켜 평화적으로 집회를 이끌어간 점이 가장 인상적"이라고 했다.
'폭력집회의 종말'이라는 성과도 있지만 이념갈등과 세대갈등이 불거지면서 사회적 긴장을 높였다는 진단이다. 특히 세대갈등은 어느 때보다 심각해졌다. 젊은 세대는 노인층을 '틀딱'(틀니 부딪치는 소리로 노인층을 비하한 표현), '알바' 등으로 부르며 비하했고, 노인층은 "고생도 못해 본 젊은이들이 나라를 망치려 든다"고 비난했다. 정모 씨(80)는 "촛불집회는 종북좌파가 박근혜와 현 정권을 끌어내리기 위한 쇼"라고 평가절하하며 "젊은이들은 각성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투신과 분신이 이어지면서 갈등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집회 취지와 무관한 '사드 반대' '한상균·이석기 석방' '통합진보당 살려내라' 등의 구호가 남발한 것도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정재열 씨(60)는 "주제와 관련 없는 '이석기' '민노총' 이야기가 본질을 흐릴 뻔 했다"고 말했다.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치권이 촛불집회의 열망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해 정권교체의 기폭제로만 활용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 절실해진 사회통합
우리 사회의 분열상을 고스란히 보여준 촛불집회 100일은 한국 사회에 '통합'이라는 큰 숙제를 남겼다. 시민들은 "촛불집회 초기에 자제력을 통해 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줬듯 또 한 번 힘을 발휘해 화합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편가르기나 진영논리가 아니라 법과 원칙에 따라 냉정을 되찾고 정제되지 않은 분노로 상대를 공격해서는 안된다고 조언했다. 특히 '극단과 배제의 정치'를 중단할 것을 정치권에 촉구했다.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차길호 기자 kil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