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어제 비상대책위원회를 열어 새 당명 후보를 ‘보수의힘’ ‘국민제일당’ ‘행복한국당’ 등 3개로 압축하고 당내 의견 수렴을 거치기로 했다. 이 중 ‘보수의힘’은 상당수 지도부가 호감을 나타내는 유력 후보로 꼽힌다. 당 상징도 태극기 문양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불출마로 갈 곳 잃은 보수층의 지지를 결집시키기 위한 것이라지만 보수와 태극기를 강조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를 외치는 ‘태극기 집회’를 떠올리게 한다.
새누리당이 당명까지 바꾸기로 한 것은 국정 농단 사태의 사실상 공범일 수밖에 없는 집권당으로서 책임을 지고 전면 쇄신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박근혜 보호’를 명분으로 전통적 지지층에 기대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한국 정치사에서 당명에 ‘보수’가 명시된 적은 없었다. 지지층의 범위를 스스로 한정 짓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명분 없는 ‘박근혜 지키기’로 당의 스펙트럼을 좁히려 하고 있다. 동아일보 여론조사에서도 국민 10명 중 8명은 박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고, 스스로 보수라고 밝힌 응답자도 절반 넘게 탄핵에 찬성했다.
새누리당의 쇄신은 일부 친박(친박근혜) 핵심에 대한 당원권 정지로 ‘인적 청산’을 마무리하고 “비난받아도 박 대통령은 지키겠다”(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고 선언할 때부터 빛이 바랬다. 국정 농단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대선 후보로 내세우겠다는 발상을 보면 새누리당이 도대체 뭘 반성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반 전 총장의 퇴장과 함께 황 권한대행이 보수층엔 사실상 ‘유일한 대안’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본보 여론조사 결과 대선 출마 반대는 57.5%나 된다.
보수정치의 핵심인 법치에 입각한 책임정치를 실종시킨 사람이 바로 박 대통령이다. 이런 박 대통령에게 매달리는 새누리당이 과연 보수를 내세울 자격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새누리당이 폐쇄적인 ‘박근혜 보수’에 연연하는 것은 오직 생명 연장을 위해 당장 쉬운 길을 가겠다는 태도로밖에 비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