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타이’ 만들고 ‘락희화학’ 키운 주역
1929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부산대를 졸업하고 해운사인 조선통운을 다니다가1953년 락희화학(LG화학의 전신) 서울사무소에 합류했다. 연암 구인회 LG그룹 창업주가 락희화학을 지원해 달라고 부른 것이 계기였다.
락희화학 상무로 재직 중이던 1962년 태국 출장을 다녀온 고인은 “동남아시아에는 물에 녹으면 빨래가 되는 합성세제가 있다. 우리도 만들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당시 한국에는 세탁기를 쓰는 가정이 드물었다. 모두가 반대했지만 고인이 강한 소신으로 밀어붙여 생산하게 됐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1966년부터 한국의 대표 세제로 자리 잡은 ‘하이타이’다. 초기에 소비자들이 낯설어해 제품이 안 팔리자 직접 빨래 시범을 보이며 현장 경영에 나선 일은 유명하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때도 후진을 위해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줬다는 평을 받고 있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1995년 2월 장남인 구본무 부회장에게 회장직을 물려줄 때 당시 LG석유화학 회장이던 고인도 고문으로 물러났다. 3세 경영에 힘을 실어 주려 한 것이다. GS그룹이 2004년 LG그룹과 계열분리를 할 때는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가 원만하게 동업 관계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왔다.
고인은 한국 산업기술 발전에도 헌신했다. 1972년 민간기술연구소협회 회장, 1980년 한국기술 정보센터 이사장을 역임했다. 1983년에는 산업기술 분야의 선구자 역할을 수행해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고인은 고 윤봉식 여사와의 사이에 아들 경수(코스모그룹 회장), 연수(GS리테일 사장), 딸 연호, 연숙 씨 등 2남 2녀를 두었다.
이날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되자마자 허창수 GS그룹 회장과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등이 빈소를 찾아 고인을 기렸다. 발인은 8일 오전 7시 30분. 02-3010-2631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